쇼코의 미소

쇼코의 미소

최은영



 단편집 중에서 쇼코의 미소가 제일 좋았다. 나머지는 약간..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신파의 느낌이 강해서 다 읽지는 않았음. 그래서 쇼코의 미소에 대해서만 쓴다.


박스 표시는 책에 나온 부분.


그때만 해도 나는 내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삶을 살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나는 비겁하게도 현실에 안주하려는 사람들을 마음속으로 비웃었다. 그런 이상한 오만으로 지금의 나는 아무것도 아니게 되어버렸지만. 그때는 나의 삶이 속물적이고 답답한 쇼코의 삶과는 전혀 다른, 자유롭고 하루하루가 생생한 삶이 되리라고 믿었던 것 같다.

(…)

대학 동기들은 은행으로, 항공사로, 출판사로 저마다 직장을 찾아서 떠났다. 나는 그 애들이 자기가 진심으로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단지 돈과 안정만을 좇는다고 생각했다. 그런 것들을 추구하는 인생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당시에 내게 중요한 건 오로지 의미였다. 나는 나의 꿈을 따라가기 때문에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있다고 자위했다. 그러나 두려웠다.

(…)

창작은 나에게 자유를 가져다줄 것이고, 나로부터 나를 해방시킬 것이고, 내가 머무는 세계의 한계를 부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늘 돈에 쫓겼고, 학원 일과 과외 자리를 잡기 위해서 애를 썼으며 돈 문제에 지나치게 예민해졌다.

(…)

그래서 꿈은 죄였다. 아니, 그건 꿈도 아니었다.

영화 일이 꿈이었다면, 그래서 내가 꿈을 좇았다면 나는 적어도 어느 부분에서는 보람을 느끼고 행복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단지 감독이 되겠다는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마음에도 없는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들었다. 나 자신도 설득할 수 없는 영화에 타인의 마음이 움직이기를 바라는 건 착각이었다.

(…)

꿈. 그것은 허영심, 공명심, 인정욕구, 복수심 같은 더러운 마음들을 뒤집어쓴 얼룩덜룩한 허울에 불과했다. 꼬인 혀로 영화 없이는 살 수 없어, 영화는 정말 절실해, 같은 말들을 하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제대로 풀리지 않는 욕망의 비린내를 맡았다. 내 욕망이 그들보다 컸으면 컸지 결코 더 작지 않았지만 나는 마치 이 일이 절실하지 않은 것처럼 연기했다.

순결한 꿈은 오로지 이 일을 즐기며 할 수 있는 재능 있는 이들의 것이었다. 그리고 영광도 그들의 것이 되어야 마땅했다. 영화는, 예술은 범인의 노력이 아니라 타고난 자들의 노력 속에서만 그 진짜 얼굴을 드러냈다.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눈물을 흘렸다. 그 사실을 인정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재능이 없는 이들이 꿈이라는 허울을 잡기 시작하는 순간, 그 허울은 천천히 삶을 좀먹어간다. - <쇼코의 미소> 中



나에게는 꿈이 없다. 아마 이성이라는 것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하던 사춘기 무렵부터 없었던 것 같다. 어린 시절 그저 엄마가 좋아하니까 멋모르고 내뱉었던 ‘판사가 될 거야, 대통령이 될 거야, 피아니스트가 될 거야’ 라는 말들을 점점 하지 않게 되면서부터, 사실은 난 되고 싶은 어떤 것이 없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더욱 꿈에 집착했다. 내게도 모든 걸 쏟아부어 쟁취하고 싶은 목표와 그럴만한 열정이 있었으면 했다. 아침 일찍 눈을 떠도 피곤하지 않은, 내일 하루를 더 기대하게 만들고 살고 싶다고 말하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으면 했다. 고3 시절엔 절박하게 울면서 기도도 했다. 제발 제가 뭘 하고 살아야 할 지 알려주세요, 제가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알려주세요, 저를 지으신 창조주, 제 머리카락 한 올까지 다 헤아리신다는 하나님, 저보다 저를 더 잘 아신다는 주님께서 제게 꿈 좀 주세요 하고. 아마 아는 사람들은 알 거다. 가슴 한 가운데가 텅 비어있는 인생, 스스로 죽을 용기는 없고 그저 살아 있으니까 살아가는 삶에 대한 피로와 권태가 얼마나 사람을 무기력하게 하는지.

나는 남들과 똑같은 교복을 입고 교실에서 멍하니 수업 받고 있을 때 피나는 노력에 대한 값진 보상으로 금메달을 거머쥐는 연아느님을 보며 박탈감을 느꼈다.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는 것이 취미였던 친구가 관련 학과에 진학하고 관련 분야에 취직해 직업으로 그림을 그리면서도 여가 시간에까지 재미로 그림을 끄적거리는 걸 보며 절망했다. 자신이 하고 싶어하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지도 않으면서 대기업 타이틀에만 목숨 거는 대학 동기들을 경멸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더러운 꼴 다 참아가며 회사에서 버티는 인생만큼은 죽어도 살기 싫었다. 쇼코의 미소에 나오는 소유가 곧 나였다.


나는 여전히 꿈을 찾는다. 그리고 순진하게도 아직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발견하지 못한 것 뿐이라고 믿고 있다. 마치 꿈을 발견하기만 하면 세상이 뒤집어질 것처럼. 그러면서 동시에 서서히 체념한다. 이렇게 어른이 되어가는구나. 결국 나도 이렇게 별 볼일 없이 세상을 스쳐가겠구나. 마냥 꼰대로만 보이던 윗사람들도 이런 숱한 체념의 시간을 견뎌왔을까 생각하면 대단해 보이기도 하고 한 편으론 안쓰럽기도 하다.



나는 여유가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튼튼한 직장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매달 갚아야 할 엄연한 빚이 있었으며 언제나 경제적으로 쫓기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어떤 가망도 없는 이 일을 계속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글을 써서 책을 내고 작가로 살아가고 싶었지만 포기할 시점이 왔다고 생각했다. 혼자 그런 생각을 하며 펑펑 울었던 적도 있다. 오래 사랑한 사람을 놓아주기로 결심한 사람처럼 울었다.

가끔 글쓰기에 해이해지고 게을러질 때면 그때 그렇게 울었던 나의 마음을 떠올려본다. 이생에서 진실로 하고 싶었던 일은 이것뿐이었다. 망상이고 환상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었다.

등단 이후, 오래 짝사랑해온 사람과 연애하는 심정으로 글을 썼다. 한 문장, 한 단락, 한 작품을 완성할 때마다 그 자체로 행복할 수 있었다. 몇 시간이고 책상에 앉아 고작 몇 줄을 쓰는 그 지지부진한 시간이 나를 살아 있는 사람으로 살게 했다. 몰두해서 글을 쓸 때만 치유되는 부분이 있었다.

십대와 이십대의 나는 나에게 너무 모진 인간이었다. 내가 나라는 이유만으로 미워하고 부당하게 대했던 것에 대해 그때의 나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다. 그애에게 맛있는 음식도 해주고 어깨도 주물러 주고 모든 것이 괜찮아지리라고 말해주고 싶다. 따뜻하고 밝은 곳에 데려가서 그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다. 그렇게 겁이 많은데도 용기를 내줘서, 여기까지 함께 와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작가의 말을 읽으며 작가님이 너무 부러웠다. 물론 더없이 힘든 시간도 참 많았겠지만 무엇을 하는 것 그 자체로 행복할 수 있다는 것, 무엇을 함으로써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 무엇을 함으로써 치유된다는 것이. 그런 ‘무엇’을 갖고 있는 건 어떤 느낌일까? 그런 게 없는 인생도 존재하는 걸까. 근데 왜 그게 하필 나일까.


애써 잊고 살던 마음 한 구석을 톡 건드려준 책이다. 다시 내 인생에 대해 생각해볼 시간을 갖게 해줘서 고마운.


홀 The Hole

홀 The Hole

편혜영



완독: 2017.08.28


“다스케테쿠다사이.”


 계속 번역투의 해외 책들만 읽다가 한국 문학 읽으니 살 것 같다. 역시 모국어가 짱이야. 사고로 전신이 마비된 ‘오기’라는 남자의 시점에서 서술되는 소설인데 술술 읽힌다. 책의 분위기가 엄청 암울할 것 같아서 걱정했지만 생각보다 절제되어 있어 읽기 편하고 심리묘사도 좋고 흥미진진하다. 후반부는 거의 스릴러임(ㅋㅋ). 등장인물들의 속물적인 면모들이 불편하면서도, 역겹기보다는 오히려 수긍이 갔다. 나였다면 과연 저러지 않을 수 있나, 저 사람이 나빠서 그런 게 아니라 원래 인간이라는 게 그렇게 약한 존재 아닌가 싶고. 물론 이렇게 충분히 납득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적절한 단계의 수위(?)이기 때문이겠다. <채식주의자> 같은 책은 사실 나 같은 범인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좀 난해했는데 이 책은 훨씬 잘 넘어간다.



 아내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분명히 알았고, 그것이 진심이라 믿었지만 대부분 해내지 못했다. 그 일로 깊이 상처받지 않았고 훌훌 털었다. 그리고 재빨리 다른 대상을 찾아 찬탄을 지속했다. 그로써 아내는 동경과 욕망을 구별하는 법을 서서히 익혀나가는 것 같았다.


간혹 자신의 성공만으로 성에 차지 않을 때가 있었다. 가까운 누군가의 실패가 더 안도감을 주기도 했다.


오기는 끈질기게 뭔가를 추구하고, 그것 이외에 다른 것은 돌아보지 않고, 결국에는 성취하고, 한길로만 살아온 것을 자부하는 사람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게 있었다. 그들은 의지가 빼어난 나머지 박약한 의지를 손쉽게 비웃었다. 운에 의지하려는 태도를 비난했다. 사소한 우연의 연쇄를 인정하지 않았다. 고집과 독선이 지나쳤고 자신의 자부가 폭력이 된다는 걸 의식하지 못했으며 남들에게 늘 가르치는 투로 말했다. 자신이 우월하다는 것을 숨기지 않았고 자만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의 박탈감을 비웃었다. 간혹 시혜적인 태도로 관용과 아량을 베풀었는데, 인간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제 삶의 여유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이런 걸 보면 작가라는 직업은 많은 인간 군상들을 관찰하고 또한 그 본성을 예리하게 포착해낼 수 있어야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을 딱 적절하게 묘사할 수 있는 능력도 함께. ‘자만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의 박탈감’이라는 표현 너무 공감되지 않아?



-약한 스포주의-


책의 마지막에 “우리는 무사할 테고, 어떤 일이 있어도 저 너머로 홀로 가지 않겠다고 얘기했다.” 라는 문장이 나온다. “홀로” 라… ‘나 홀로’라고 할 때 그 홀로일 수도 있고 ‘hole이라는 장소로’ 라는 뜻일수도 있겠구나. 작가의 의도겠지? 왠지 마지막을 위해 이 중의적 표현을 벼르고 있었던 느낌이다.




 그나저나 도서관 책에 줄 긋고 필기하는 사람은 도대체 무슨 생각이야... 마치 이 책으로 문학 강의를 들었거나 공부를 한 것처럼 중간중간 밑줄이 그어져있고 그 옆에 해석같은 것이 적혀 있다. 이렇게 기본적인 예절도 지키지 못하는데 책을 읽고 분석하고 공부를 하면 뭐해. 지식만 쌓는 것이 능사랍니까. 낙서 볼 때마다 몰입도가 뚝뚝 떨어져서 힘들었다. 나중에는 여력이 닿는 대로 지우개로 지워가면서 읽었음.


 서울의 어느 평생학습관에서 이 책 빌려다 연필로 족족 필기해 두신 분, 반성합시다. 이런 거 어떻게 관리할 수 있는 기술 없나?


# 열린책들 세계문학전집 190권 읽기 프로젝트 (8/190)

천로역정

천로역정

존 버니언 저 / 이동일


사실 예전에 <리마커블 천로역정>을 먼저 읽었는데 그닥 내 취향이 아니었다. 하지만 천로역정의 원본(?)도 언젠가 읽어봐야겠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다.


 역시 재미는 없었다. 재미를 위해 읽은 것도 아니긴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오두막>도 내 취향이 아니었다는 게 생각났다. 적어도 기독교 서적에 관해서는 이렇게 비유적인 이야기보다 차라리 직접적으로 설명하는 책이 더 나에겐 잘 맞나보다. 하지만 재미없었다고 해서 깨달음도 없었던 건 아니다.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구절들도 있어서 전자책 기능으로 밑줄 쳐가며 읽었다. 그런데 전자책 용량 때문에 이미 읽은 책들을 삭제해버려서 감명깊은 구절에 밑줄 쳐 놓은 게 싹 다 날아갔다 하… 글 쓰고 나서 지울 걸.


 아래는 책을 읽고 기억나는 내용들.


  크리스천이 첫 번째 좁은 문을 지날 때, 친절이 문을 열어주고 크리스천을 얼른 잡아 당기면서 하는 말이, 가끔 바알세불이라는 사탄이 이 문을 향해 올라오는 사람들에게 화살을 쏘기 때문에 여기로 오는 사람 중 몇 명은 이 문을 지나기도 전에 죽는다고 말한다.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 죽는 사람들이 있다는 뜻일까?


 해설자의 집. 응접실을 청소하는 부분이 인상 깊다. 먼지가 가득한 집을 빗자루로 쓸면 먼지가 더 날릴 뿐이다. 죄로 가득한 인생이 율법을 지키며 살려고 노력해봤자 죄를 더욱 살아나게 하고 마음이 더욱 죄로 가득하게 되는 것을 비유한 것이라고 한다. 격공. 죄의식이나 죄책감, 또는 참으면 참을 수록 더 강해지는 욕망 등을 뜻하는 것이겠지. 그러나 물을 뿌리고 청소하면 잘 됨. 물은 복음.



 천로역정의 내용이 성경에 기반을 두고 있다 보니 자연스레 성경에 나오는 구절에 대한 것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사탄이  자신에게 절을 하면 세상 모든 것을 주겠다고 예수님을 시험한 것에 대해. 애초에 세상의 것들은 썩어 없어질 것들이므로 그것들을 주는 것은 멀리 보면 전혀 좋은 것이 아님. 죽고 나면 사라질 것들. 이 세상을 떠날 때 가지고 갈 수 없는 것들. 그런 것들을 다 준다고 해도 어차피 죽고 나면 끝이다. 허무한 것.


 궁금한 점.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느니라". 율법을 지키는 것만으로는 사람은 절대 온전해질 수 없다는 건 이해가 간다. 율법을 온전히 지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할 뿐더러, 설령 가능하다고 해도 그것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과연 얼마나 되는가? 양심의 만족? 주변 사람들의 존경? 아무튼 여기까지는 이해가 됨. 근데 왜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을 굳이 저주 아래에 있다고까지 말하는 걸까? 율법에 얽매여있기 때문에?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라 율법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율법으로 다른 사람들을 정죄하기 때문에? 바리새인 같은 사람들을 말하는 걸까?


음... 마무리를 어떻게 하지. 아무튼 재미는 없다.



신세계에서 1

신세계에서 1

기시 유스케 저 / 이선희



 작가가 떡밥 던지기 장인이시다. 너무 많이 나와서 나중엔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음. “ ~~해서 우리는 드디어 안심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해서 다행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이상하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았다…”, “우리는 ~~했다. 하지만 그 때 그러지 않았다면 조금은 달라졌을까….” 이런 식의 서술이 꽤 자주 나와서 나중엔 그런 문장이 나올 때마다 웃음이 나왔다. 처음에는 ‘헉 뭐지?’라고 생각했지만 점점 ‘또 시작이네’, ‘ 왜 또 뭔데’ 하다가 나중엔 ‘어련하시겠어.’ 하게 되고 급기야 정상적인 상황도 떡밥으로 의심하는 지경까지 이른다. 그러다 결국 언제 또 떡밥 나오나 은근 기다리게 됨.


 내용은 정말 재미있다. 재미있다는 후기를 많이 봐서 일단 1권만 도서관에서 빌려왔는데, 읽다 보니 빨리 다음 내용을 읽고 싶어서 도서관 문 닫기 전에 빌리러 가려고 퇴근 시간도 조정했다. 기시 유스케는 진정 이야기꾼이구나. 검은 집도 정말 재미있게 봤었는데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해리 포터에 나오는 신비한 동물들이나 약품이나 마법 등등은 신기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충분히 상상할 만하다 싶은데 여기에 나오는 것들은 묘사를 읽으면서도 머릿속으로 그려지지조차 않는다. 이런 상상력은 타고나는 것일까? 어떻게 이 모든 걸 구상하고 이야기로 진행할 수 있을까? 타고난 재능도 있었겠지만 또한 엄청난 노력과 공부가 수반되었을 것이다. 대다내..!


 대학 시절, 방학 때 논문 연구에 보조로 참여했던 적이 있는데 그 때 지도해주셨던 교수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생각난다. 어떻게 해야 더 좋은 결과가 나올까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도통 방법을 모르겠는데 교수님께서는 매번 다양한 방법들을 조언해 주셨었다. 어떻게 이런 방법을 생각해내신걸까하고 내가 신기해하니 교수님께서 말씀해주셨던 것 같다(사실 상황이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음).  대부분은 젊은 사람들이 더 상상력이 뛰어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오랜 세월을 살아오며 다양한 경험을 하고 지식을 쌓은 당신께서 너희들보다 더 새로운 생각을 잘 할 수도 있다고 하셨다. 다만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아집과 딱딱하게 굳은 사고가 걸림돌이 된다고. 그래서 교수님께서도 쉽지는 않지만 최대한 남의 생각을 유연하게 받아들이려고 노력하신다고. 참 멋있어 보였고 나도 저런 어른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냥, 작가의 창의력과 상상력 얘기를 하다보니 문득 이 에피소드가 떠오르네.



사토루는 예전에 몰래 읽은 책 속에서 불도그에 관한 내용을 보았다고 한다. 고대 영국에서 소와 싸우게 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것이다. (...) 그런데 사토루의 말이라서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몇 가지 이유에서 나는 그 설을 믿을 수 없었다. 애당초 왜 개와 소를 싸우게 했는지를 이해할 수 없다. 사토루가 본 책에서는 오락을 위해서라고 쓰여 있었다고 하는데, 인간이 그렇게까지 무의미하게 잔혹해질 수 있다고는 믿고 싶지 않다.


이런 식으로 미래인의 시선을 통해 비판하는 것도 재미있다. 작가의 유머라고 생각한다.



별점 3점 정도의 재미? 어마어마하게 재미있지는 않지만 술술 잘 읽어내려갈 수 있는 정도의 책. 읽어보라고 추천할 정도는 아님. 읽을 거면 읽고 말 거면 말고 정도?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신기하면서도 공감갔던 구절.


"몇 년 전부터 '은둔형 외톨이'니 '니트족'이니 하는 단어를 종종 접하게 되었습니다. (…) 저는 항상 이런 현상에 해당하는 사람들 (...) 에게 이런 명칭을 부여한 게 문제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어느 집단에 속하거나 직함을 얻음으로써 안도하고 있지 않을까요.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아무 직함도 없다는 말은 자기가 사회의 일원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나 다름없습니다. (…) 하지만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은둔형 외톨이'니 '니트족'이니 하는 이름을 붙여버리면 그 시점부터 그것이 그 사람들의 소속이자 직함이 되고 맙니다. 사회속에서 '은둔형 외톨이'나 '니트족'이라는 자리를 확보한 사람들은 그것만으로 안심해서 일을 하거나 학교에 가려는 노력을 그만두는 거예요."  - <자애자> 부분 나오키 엄마의 일기 중에서




아니 근데 그래서 와타나베의 어머니의 대답은 뭐였죠?? 네???

가장 궁금한 부분을 알려주지 않고 끝내는 결말이란.... 열린 결말도 아니면서.....

# 열린책들 세계문학전집 190권 읽기 프로젝트 (6/190, 7/190)


제인에어 (상)

제인에어 (상)

샬럿 브론테 저 / 이미선



 성장소설인듯 신파 연애소설인듯 엄청나게 재미있지도 재미없지도 않고 그냥 쭉 읽어내려가지는 그 정도. 어렸을 때 어린이용으로 나온 책을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어서 어른용(?)으로 다시 읽어보자 싶어 골랐다. 이상하다. 어릴 땐 참 재미있게 읽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모르겠다. 재미없다고 하기엔 재미있는데 재미있다고 하기엔 재미없다.


 가장 좋아하는 인물은 헬렌 번스이다. 제인 에어가 학교에서 만난 친구인데, 삶에 대한 초연한 태도와 포용할 줄 마음이 참..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헬렌이 제인에게 해주는 말들은 마치 내게 해주는 말 같았다. 헬렌의 조곤조곤한 목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어렸을 때 읽었다고 해서 말인데, 독서나 게임이나 개인적인 취미이고 유흥이라는 것은 인정하는 바이고 나 역시 게임을 좋아하지만 적어도 유년기에는 독서가 훨씬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어휘력, 상상력, 집중력, 좀 더 보태면 학습능력까지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근거는 모름ㅋ 그냥 내 경험상 그렇다. 고등학교 시절 모의고사 언어영역은 따로 공부를 안 해도 성적이 잘 나왔는데 난 그것이 99% 어린 시절의 다독으로부터 나온 결과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시 생각하면 독서가 내 취향에 맞았기 때문에 즐겁게 할 수 있었던 것이리라. 가만히 자리에 앉아 책을 읽는 게 지루한 사람도 분명 있을 테다. 책을 읽으며 작가가 건네 준 상상 속 세계로 들어가는 것보다 놀이터에서 직접 상상력을 발휘해 뛰노는 것이 더 즐거운 아이도 있을테니까. 그런 아이에게 강제로 독서를 시켜봤자 반감만 생기고 효과는 미미할 것이다. 사람마다 취향도 적성도 능력도 다른 거니까.


 그러니 무조건 강요는 할 수 없겠지만 다만 내가 바라는 것은 내가 나중에 아이를 낳게 된다면 그 아이도 독서를 좋아하기를. 그래서 아이가 좀 더 자란다면 같은 책을 읽고 서로 추천해주며 즐겁게 살고 싶다. 아 물론 남편도 당연히 독서를 좋아해야됨.


 그래서 내 미래의 남편 어딨니~ 내 목소리 들리니~

# 열린책들 세계문학전집 190권 읽기 프로젝트 (4/190, 5/190)


거장과 마르가리따 (상)

거장과 마르가리따 (상)

미하일 불가꼬프 저 / 홍대화



 와…. 정말 읽기 힘들었다. 정말 내 취향이 아니었으나 오로지 세계 문학 전집 읽기 프로젝트를 위해 꾸역꾸역 읽음. 재미 없는 책을 왜 굳이 읽느냐며 어리석다 할 수도 있겠지만 뭐!! 내 맴이야!! 기어코 190권을 다 읽고야 말겠어……...ㅂㄷㅂㄷ


 책 제목이 왠지 읽었다고 남들에게 허세부리기 좋은 제목인 것 같아 열심히 읽어보려고 했는데 재미도 없고 혼란스럽고 장면이 머릿속으로 그려지지도 않고 읽는 내내 마음 어딘가 불편하고 고역이었다. 그나마 내가 느낀 불편함이 작가가 의도한 것이었길 바랄 뿐.


 소설 전반부에 풍자가 담긴 여러가지 이야기들까지는 그런 대로 읽을만 했으나 마르가리따가 본격적으로 나오는 부분부터는 내 정신을 놓아버렸다. 기계적으로 글자만 읽어내려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검은 것은 글씨요 흰 것은 전자책 바탕화면이라…


 이 책 재미있다고 하시는 분들 진짜 존경합니다.

# 열린책들 세계문학전집 190권 모두읽기 프로젝트 (2/190, 3/190)


드라큘라 (상)

드라큘라 (상)

브램 스토커 저 / 이세욱


 내가 처음으로 읽은 뱀파이어 소설은 엘리자베스 코스토바의 <히스토리언> 이었다. 거의 출판되자마자 읽었으니까 아마 2005년에 읽었나 보다. 아무튼, 그 때 상당히 재미있게 읽고 감명받아서 무려 <뱀파이어 걸작선>이라는 책을 샀다가 실망한 후로 뱀파이어에 대한 관심을 끊었더랬다. 그러다가 최근에 출퇴근길에 가볍게 읽을 책을 고르다가 눈에 띄길래 읽었는데 과연 명작은 명작이구만. 재미있다. 오랜 시간 사랑받는 책은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이 책은 등장인물들이 주고받는 편지와 각 인물들의 일기 형식으로만 되어있다. 이런 형식 별로 안 좋아하는데도 재미있었다. 음… 뭐 재미있었다는 거 말고는 딱히 쓸 말이 없네.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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