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코의 미소
최은영 저
단편집 중에서 쇼코의 미소가 제일 좋았다. 나머지는 약간..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신파의 느낌이 강해서 다 읽지는 않았음. 그래서 쇼코의 미소에 대해서만 쓴다.
박스 표시는 책에 나온 부분.
그때만 해도 나는 내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삶을 살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나는 비겁하게도 현실에 안주하려는 사람들을 마음속으로 비웃었다. 그런 이상한 오만으로 지금의 나는 아무것도 아니게 되어버렸지만. 그때는 나의 삶이 속물적이고 답답한 쇼코의 삶과는 전혀 다른, 자유롭고 하루하루가 생생한 삶이 되리라고 믿었던 것 같다.
(…)
대학 동기들은 은행으로, 항공사로, 출판사로 저마다 직장을 찾아서 떠났다. 나는 그 애들이 자기가 진심으로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단지 돈과 안정만을 좇는다고 생각했다. 그런 것들을 추구하는 인생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당시에 내게 중요한 건 오로지 의미였다. 나는 나의 꿈을 따라가기 때문에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있다고 자위했다. 그러나 두려웠다.
(…)
창작은 나에게 자유를 가져다줄 것이고, 나로부터 나를 해방시킬 것이고, 내가 머무는 세계의 한계를 부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늘 돈에 쫓겼고, 학원 일과 과외 자리를 잡기 위해서 애를 썼으며 돈 문제에 지나치게 예민해졌다.
(…)
그래서 꿈은 죄였다. 아니, 그건 꿈도 아니었다.
영화 일이 꿈이었다면, 그래서 내가 꿈을 좇았다면 나는 적어도 어느 부분에서는 보람을 느끼고 행복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단지 감독이 되겠다는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마음에도 없는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들었다. 나 자신도 설득할 수 없는 영화에 타인의 마음이 움직이기를 바라는 건 착각이었다.
(…)
꿈. 그것은 허영심, 공명심, 인정욕구, 복수심 같은 더러운 마음들을 뒤집어쓴 얼룩덜룩한 허울에 불과했다. 꼬인 혀로 영화 없이는 살 수 없어, 영화는 정말 절실해, 같은 말들을 하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제대로 풀리지 않는 욕망의 비린내를 맡았다. 내 욕망이 그들보다 컸으면 컸지 결코 더 작지 않았지만 나는 마치 이 일이 절실하지 않은 것처럼 연기했다.
순결한 꿈은 오로지 이 일을 즐기며 할 수 있는 재능 있는 이들의 것이었다. 그리고 영광도 그들의 것이 되어야 마땅했다. 영화는, 예술은 범인의 노력이 아니라 타고난 자들의 노력 속에서만 그 진짜 얼굴을 드러냈다.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눈물을 흘렸다. 그 사실을 인정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재능이 없는 이들이 꿈이라는 허울을 잡기 시작하는 순간, 그 허울은 천천히 삶을 좀먹어간다. - <쇼코의 미소> 中
나에게는 꿈이 없다. 아마 이성이라는 것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하던 사춘기 무렵부터 없었던 것 같다. 어린 시절 그저 엄마가 좋아하니까 멋모르고 내뱉었던 ‘판사가 될 거야, 대통령이 될 거야, 피아니스트가 될 거야’ 라는 말들을 점점 하지 않게 되면서부터, 사실은 난 되고 싶은 어떤 것이 없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더욱 꿈에 집착했다. 내게도 모든 걸 쏟아부어 쟁취하고 싶은 목표와 그럴만한 열정이 있었으면 했다. 아침 일찍 눈을 떠도 피곤하지 않은, 내일 하루를 더 기대하게 만들고 살고 싶다고 말하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으면 했다. 고3 시절엔 절박하게 울면서 기도도 했다. 제발 제가 뭘 하고 살아야 할 지 알려주세요, 제가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알려주세요, 저를 지으신 창조주, 제 머리카락 한 올까지 다 헤아리신다는 하나님, 저보다 저를 더 잘 아신다는 주님께서 제게 꿈 좀 주세요 하고. 아마 아는 사람들은 알 거다. 가슴 한 가운데가 텅 비어있는 인생, 스스로 죽을 용기는 없고 그저 살아 있으니까 살아가는 삶에 대한 피로와 권태가 얼마나 사람을 무기력하게 하는지.
나는 남들과 똑같은 교복을 입고 교실에서 멍하니 수업 받고 있을 때 피나는 노력에 대한 값진 보상으로 금메달을 거머쥐는 연아느님을 보며 박탈감을 느꼈다.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는 것이 취미였던 친구가 관련 학과에 진학하고 관련 분야에 취직해 직업으로 그림을 그리면서도 여가 시간에까지 재미로 그림을 끄적거리는 걸 보며 절망했다. 자신이 하고 싶어하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지도 않으면서 대기업 타이틀에만 목숨 거는 대학 동기들을 경멸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더러운 꼴 다 참아가며 회사에서 버티는 인생만큼은 죽어도 살기 싫었다. 쇼코의 미소에 나오는 소유가 곧 나였다.
나는 여전히 꿈을 찾는다. 그리고 순진하게도 아직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발견하지 못한 것 뿐이라고 믿고 있다. 마치 꿈을 발견하기만 하면 세상이 뒤집어질 것처럼. 그러면서 동시에 서서히 체념한다. 이렇게 어른이 되어가는구나. 결국 나도 이렇게 별 볼일 없이 세상을 스쳐가겠구나. 마냥 꼰대로만 보이던 윗사람들도 이런 숱한 체념의 시간을 견뎌왔을까 생각하면 대단해 보이기도 하고 한 편으론 안쓰럽기도 하다.
나는 여유가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튼튼한 직장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매달 갚아야 할 엄연한 빚이 있었으며 언제나 경제적으로 쫓기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어떤 가망도 없는 이 일을 계속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글을 써서 책을 내고 작가로 살아가고 싶었지만 포기할 시점이 왔다고 생각했다. 혼자 그런 생각을 하며 펑펑 울었던 적도 있다. 오래 사랑한 사람을 놓아주기로 결심한 사람처럼 울었다.
가끔 글쓰기에 해이해지고 게을러질 때면 그때 그렇게 울었던 나의 마음을 떠올려본다. 이생에서 진실로 하고 싶었던 일은 이것뿐이었다. 망상이고 환상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었다.
등단 이후, 오래 짝사랑해온 사람과 연애하는 심정으로 글을 썼다. 한 문장, 한 단락, 한 작품을 완성할 때마다 그 자체로 행복할 수 있었다. 몇 시간이고 책상에 앉아 고작 몇 줄을 쓰는 그 지지부진한 시간이 나를 살아 있는 사람으로 살게 했다. 몰두해서 글을 쓸 때만 치유되는 부분이 있었다.
십대와 이십대의 나는 나에게 너무 모진 인간이었다. 내가 나라는 이유만으로 미워하고 부당하게 대했던 것에 대해 그때의 나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다. 그애에게 맛있는 음식도 해주고 어깨도 주물러 주고 모든 것이 괜찮아지리라고 말해주고 싶다. 따뜻하고 밝은 곳에 데려가서 그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다. 그렇게 겁이 많은데도 용기를 내줘서, 여기까지 함께 와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작가의 말을 읽으며 작가님이 너무 부러웠다. 물론 더없이 힘든 시간도 참 많았겠지만 무엇을 하는 것 그 자체로 행복할 수 있다는 것, 무엇을 함으로써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 무엇을 함으로써 치유된다는 것이. 그런 ‘무엇’을 갖고 있는 건 어떤 느낌일까? 그런 게 없는 인생도 존재하는 걸까. 근데 왜 그게 하필 나일까.
애써 잊고 살던 마음 한 구석을 톡 건드려준 책이다. 다시 내 인생에 대해 생각해볼 시간을 갖게 해줘서 고마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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