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보내지 마

나를 보내지 마

가즈오 이시구로 저/김남주


완독: 2018.11.28


-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1) 클론(복제인간)들을 위한 학교인 헤일셤 학교의 학생들의 성장 소설. 성장이라는 단어를 붙일 수 있는 건 캐시와 토미 한정인가.

 2) '인간' 혹은 '인간성'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책.


  이상하다.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만 해도 별 느낌이 없었고 단지 여러가지 생각을 해보게 하는 좋은 책이라고만 느꼈는데 방금 복제인간들을 위한 학교라는 문장을 치는 순간 나도 모르게 울컥하며 눈물이 날 뻔 했다. 아마도 클론들에게 감정 이입이 됐나보다. 좋은 책이구나.


  완독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 도서관에서 책을 대출한 후 2번이나 연기하고서도 반납 마지막 날 겨우 다 읽어냈다. 그리고 반납 당일에 꾸역꾸역 읽어낸 책의 마지막 부분이 이 책의 핵심이자 가장 좋았던 부분이었다. 사실 마지막 부분에서 책의 주제를 대놓고 알려주기도 하지만. 내용의 거의 80프로를 헤일셤 학생들의 일상으로 채운 것은 그들도 근원자들과 별다를 것 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걸까.



  헤일셤 학교가 클론들에게 준 것은 무엇인가. 자신들의 근원자를 위한 기증의 도구일 뿐인 클론들에게 예술을, 세상을 가르치는 것은 무슨 쓸모가 있는가.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는 걸 알면서도 오늘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는 것은 무엇 때문가.


  쓸모는 없을 지 모른다. 하지만 그래야 한다. 왜냐면 클론들 역시 인간이니까. 헤일셤 학교는 그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는 것을 그들에게 주었다. 그것은 바로 '인간성'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언젠가는 근원자를 위해 기증을 하다 죽는다 하더라도 생을 마치는 순간까지 인간으로 살다 가는 것. 헤일셤은 그 기회를, 그 권리를 클론들에게 주었다. 다른 곳에서는 클론을 사육했지만, 헤일셤은 클론들을 '교육'했다.


  그렇다면 이런 생각도 해보게 된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교육인가? 인간답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정답이 없는 질문들이 날아온다.





+ 읽는 내내 루스 비호감이어서 좀 힘들었다.


+ 한 가지 상상. 헤일셤에 들러 학생들의 작품을 화랑으로 가져가곤 했던 마담 마리클로드는 사실 교장 에밀리와 함께 같은 목적으로 헤일셤을 운영(?)하던 사람이다. 그런데 어쩌면.. 그녀는 에밀리의 클론이 아닐까? 에밀리가 자신의 클론을 구해낸 게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해봤다. 만약 책에서 마담이 에밀리를 닮았다는 언급이 한 마디라도 있었다면 백프로일텐데 그런 부분은 아마 없었던 것 같고, 마담의 정체에 대한 언급이 있었는지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제대로 좀 읽자....). 마담이 클론들을 보면 얼어버린다는 표현을 봐서는 클론이 아닐 것 같지만, 그래도 이런 낭만적인 상상을 하고 나서 이 책이 더 좋아졌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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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고래

천명관



길거리에서 어느 이야기꾼이 사람을 홀리는 말솜씨로 들려주는 이야기를 그 앞에 자리 잡고 바닥에 철푸덕 앉아서 듣는 기분. 지루할 틈이 없다. 처음부터 매료되고, 어떻게 이렇게 계속해서 재미있을 수 있지? 점차 재미가 고조되는 게 아니라 그냥 한결같이 계속 재미있다. 그래프로 따지자면 싸인 코싸인 그래프가 아니라 마치 y=n 처럼 y값이 항상 일정한, 즉 항상 재미있는 소설. 다만 3부에서는 조금 힘이 빠진 듯. 결말로 가고 있다는 걸 알려주기라도 하는 듯 내리막길처럼 서서히 가라앉는 느낌이다.



와.. 이 책은 진짜 대단하다. 엄청나다. 너무 흔하고 널린 소재라 이제 신물이 나는 1900년대를 배경으로 글을 썼는데 이렇게 재미있을 수가 있나??? 워낙 이 책에 대한 칭찬을 많이 봐왔던 터라 나름 기대가 컸는데, 그 기대를 충족시키고도 남으며 오히려 훨씬 상회한다. 책의 초반부를 읽으면서는 재미있긴 하네, 평가가 괜찮을 만 하군, 정도였는데 계속 읽어가다 보니 와 이거 왜 사람들이 왜 그렇게 극찬했는지 알겠다는 느낌? 히야…. 대다내. 이야기가 폭발한다는 표현이 딱 적절할 것 같다.


적당한 거리를 두며 이야기를 들려준다. 감정 이입이 되어서 주인공의 희노애락을 같이 느끼기보다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흥미진진하게 바라보게 됨.


“독자들이여” 라던지, “그녀가 누군지 벌써 잊은 건 아니시겠지?” 라는 식으로 화자가 직접 개입하는 부분이 있는데, 옛날 옛적에 많이 쓰이던 거의 뭐 설화나 고전 소설에서나 나왔을 법한 방식이 요즘 책에서 나오니 오히려 신선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솜씨가 탁월해서 정말 재미있다. 신기하다. 시작부터 단숨에 몰입하게 하더니, 인물 별로 서로 다른 에피소드를 풀어가는데 전혀 지루하지가 않고 난잡하다는 느낌도 없다. 중간 중간 익살스러운 표현들도 재미있다.



노파와 반편이 사이에서 벌어진 이후의 이야기는 암컷과 수컷 사이에서 일어난 수많은 이야기, 그 허망한 단순성에도 불구하고 쉴새없이 만들어지고 부풀려지며 사람들의 입과 귀를 통해 끝없이 퍼져나가 마침내 온 세상을 가득 채우게 된, 여느 합궁에 대한 이야기들과 별반 다를 바 없다.


그녀는 근처에서 부엌살이를 하던 동향 친구를 만나 조심스럽게 귓속말을 주고받았고, 일단 컨베이어벨트에 올려진 귓속말은 곧 자동공정을 통해 매우 그럴듯하고 선정적인 이야기로 부풀려져 온 동리를 거쳐 인근마을에까지 퍼져나갔다.


그는 어릴 때부터 일찌감치 장터를 떠돌다 여자를 만나 결혼도 했지만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여자가 호떡장수와 눈이 맞아 달아나는 바람에 혼자 살고 있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도 말솜씨가 좋았지만 이즈음해서는 그 솜씨가 더욱 늘어 어찌나 조리 있고 구변이 좋던지 이야기자락마다 한숨이요, 눈물이요, 박장대소였다. 고향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올 즈음에는 청산유수로 쏟아내는 그의 말솜씨에 세 여자가 모두 넋을 잃어 국이 졸아붙는지 밥이 타는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그것은 구라의 법칙이었다.


구라의 법칙ㅋㅋㅋㅋㅋㅋㅋ 어떤 작품을 읽고 나면 그 작가의 다른 작품도 다 읽어보고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이 있는데, 그게 바로 이 책인듯. 작가님의 위트가 너무 내 스타일이야.




살인과 강간은 범죄가 되었고 도둑질과 방화, 싸움질이나 남의 물건을 사사로이 빼앗는 것 또한 금지되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은 별로 할 일이 없어져버렸다.


이날 쏟아진 구호들 가운데, ‘벽돌을 못 쓰게 죄다 깨뜨려버립시다!’나, ‘가마를 부숴버립시다!’ 혹은 ‘공장에 불을 질러버립시다!’와 같은 주장은 잔뜩 화가 난 일꾼들 사이에서 일견 나올 법한 얘기였지만 어디선가 튀어나온 ‘파쇼에게 죽음을! 노동자에게 생존권을!’이나 ‘재벌독재 타도하여 노동자 천국 이룩하자!’와 같은 구호는 산골짜기에 있는 벽돌공장에서 써먹기엔 다소 유난스런 감이 없지 않았으며,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만세!’나 ‘수령님의 영도 따라 미제를 박살내자!’와 같은 구호는 다소 수상한 감이 없지 않은데다, ‘아름다운 금수강산에 벽돌공장 웬 말이냐!’나 ‘생태계를 파괴하는 개발독재 물러가라!’와 같은 구호는 다소 때 이른 감이 없지 않았는데, 또 어디선가 느닷없이 튀어나온, ‘영숙아, 사랑해!’나, ‘씹할, 그때 홍싸리를 먹는건데’와 같은 소리는 그야말로 구호도 아니고 뭣도 아닌, 분위기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자들이 내지른 잡소리에 불과했다 아니할 수 없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영숙아 사랑해!ㅋㅋㅋㅋㅋㅋ 아 이거 이 내용만 써 놓으니까 다 전달이 안 될 텐데, 분명 다른 사람들도 이 책을 읽다가 이 부분에 당도했을 때 킥킥 댔을 거야 분명.ㅋㅋㅋㅋㅋ홍싸리가 왜 나와ㅋㅋㅋㅋ



사람들은 하는 일이 없어도 괜히 마음이 바빠 허둥거렸고 아무리 밥을 많이 먹어도 이유 없이 속이 헛헛해 다방을 찾아가 독한 커피라도 한 잔 들이부어야 겨우 속이 차는 듯싶었다. 또한 다방에 앉아 하릴 없이 이 말 저 말 옮기다보니 사람들 간의 관계는 더욱 번잡스러워졌고 시비는 늘어났으며 오해를 풀고 화해를 하느라 술값이, 혹은 커피 값이 더 많이 들어가 소비가 더욱 촉진될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 마음 속엔 어느덧 공허가 가득 들어찼고 금복은 이를 차곡차곡 돈으로 바꾸어나갔다. 그것은 자본주의의 법칙이었다.


곧 미사일론에 대한 반박이 뒤따랐다. 전쟁을 겪어보지도 않은 노파가 어떻게 미사일을 아느냐는 거였다. 귀신이기 때문에 모르는 게 없다는 해명에 대해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하지 말라는 반박이 나왔으며, 뒤이어 어따 대고 선배 앞에서 그따위 개소리를 하느냐는 성명이 발표되자, 너 대학 어디 나왔냐는 질문이 나왔고, 이 씹쌔야, 어딜 나온 게 무슨 상관이냐는 반론이 제기되자, 저 새끼, 싸가지 없는 건 학교 다닐 때부터 알아봤다는 인물평과, 저 새끼는 학계에서 완전히 매장시켜버려야 된다는 매장론이 뒤따랐으며, 선배 무시하다 뒈지게 맞고 피똥 싼 놈 많다는 협박과, 누군 씹할, 고스톱 쳐서 학위 딴지 아냐는 고스톱 학위론, 그럼 씹쌕꺄, 미사일이 아니면 도대체 뭐냐, 뭐긴 뭐야, 색꺄, 니 애비 좆이라니까, 라는 식으로 반박이 줄줄이 이어지며 논쟁은 점점 진흙탕 싸움으로 변질되어 갔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고래란 무엇일까.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사실 고래의 의미에 대해서는 책의 중반부에 이미 나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진정한 의미를 발견하고 싶지 않은 까닭은,


“진실이란 본시 손안에 쥐는 순간 녹아 없어지는 얼음처럼 사라지기 쉬운 법이다. 그래서 어쩌면 혹, 그 모든 설명과 해석을 유예하는 것만이 진실에 가까워지는 길 아닐까? 그럼으로써 그녀를 단순하고 정태적인 진술 안에 가둬두지 않고 자유롭게 풀어주는 것만이, 또 그럼으로써 그 옛날 남발안의 계곡을 스쳐가던 바람처럼 가볍게 흩어지도록 놓아주는 것만이 진실에 다가가는 길은 아닐까?”



추천한다,는 상투적인 표현을 쓰기엔 이 책에 미안할 정도다. 하지만 추천한다. 꼭 읽어보시길!

저스티스맨

저스티스맨

도선우



 예전에, 자주 들여다볼 만한 독서 블로그가 있을까 해서 검색해보다가 한 블로그를 발견했었다. 워낙 글을 시니컬하면서도 유쾌하게 쓰시길래 즐겨찾기에 추가해두고 자주 들렀었는데 어느 날 보니 모든 글들이 다 삭제되어있고 글쎄, 블로그의 운영자가 책을 냈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 책은 <스파링> 이었고 그 블로그 운영자가 도선우님이었다. 그 분의 블로그 글들을 워낙 재미있게 읽었던 터라 책도 읽어보고 싶었지만 책의 줄거리가 내 스타일이 아니어서 선뜻 끌리지 않았는데 마침 두 번째 책이 있다고 해서 골랐고, 그것이 <저스티스맨>이다.


 마치 정의 구현의 수단으로 이루어지는 듯한 연쇄 살인이 책의 주제이고 살인 그 자체나 살인범을 추리하는 내용보다는 피살자가 왜 살해 당하게 되었을까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각각의 피살자들은 마치 작가가 어떤 유형의 인간상을 세상에 고발하고 싶은지를 말하는 듯하다. 또한 이 연쇄 살인 사건과 관련된 내용은 ‘저스티스맨’이라는 사람이 운영하는 인터넷 까페를 통해 세상에 공유되는데, 익명성 뒤에 숨어서 더욱 난폭해지거나 사소한 것에도 쉽게 선동되는 네티즌들의 모습 등 현재 우리가 인터넷 상에서 보고 겪고 있는 다양한 현상들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형식만 소설이다 뿐이지 작가가 어떤 시선으로 현 세상을 바라보는지 굉장히 직접적으로 나타난다.


 책이 재미 없는 건 아니다. 마무리가 좀 아쉬운 감이 있지만 애초부터 작가가 비중 있게 다루고자 했던 건 살인범의 정체라거나 추리 같은 건 아닌 것 같으니까 뭐. 하지만 마지막에 뭔가 헉 하고 독자들이 눈을 한 번 크게 뜰 만한, 혹은 감탄사 한 번 내뱉을만한 내용 정도는 있었어도 괜찮지 않았을까? 흠 내 취향인 건가.


 하지만 아무래도 블로그에 쓰셨던 글 같은 유쾌한 분위기를 기대하고 읽어서 그런지, 사실 소설 그 자체보다는 작가의 말이 더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읽히고 내가 기다렸던 글이라는 느낌이 있었다.




동물 농장

동물 농장

조지 오웰


# 열린책들 세계문학전집 190권 읽기 프로젝트 (12/190)


1984를 읽고 연달아 동물농장을 읽으니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꽤 보인다. 여론을 조작하는 내용이라던지, 폭력으로 권력을 유지하는 모습이라던지, 우매한 대중의 모습이라던지.


그러나 뭐랄까.. 좀 다른 점이 있다면 1984는 체제 아래서 고통 받는 인간의 삶에 대한 내용에 가까웠다면 동물농장은 권력의 부패?에 대해 좀 더 집중하고 있다고 할까. 1984는 체제 아래에서 한 개인의 자유나 존엄성이 짓밟히는 모습을 그렸다면 동물농장은 체제와 권력 아래에서 말로는 모두가 평등하다 하지만 사실상 계급사회이며 소수의 권력자에 의해 다수가 지배받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 느낌.



동물농장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책에 나오는 딱 두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아마 이것일 것이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



평등이라는 개념에 비교급이 가능한가? “더” 평등한 것은 과연 무엇인가. 더 평등하다는 것은 곧 불평등하다는 것이다.


처음엔 자신들을 지배하는 인간에게서 벗어나겠다는 목표를 위해 동등한 위치에서 시작했으나 점차 지식을 가진 특정 소수에게 권력이 집중되면서 권력은 부패하고, 결국 그 권력을 지닌 동물들이 나머지 동물들을 지배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타도의 주체가 타도의 대상으로 변해버린다. 처음의 목표는 퇴색한 지 오래다.



또한 작가는 마지막을 굉장히 직접적인 문장으로 마무리하고 있다.


창밖의 동물들은 돼지를 한 번 보고 인간을 한 번 보고, 인간을 한 번 보고 돼지를 한 번 보고, 번갈아 자꾸만 쳐다보았다. 그러나 이미 어느 쪽이 인간이고 어느 쪽이 돼지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어느 쪽이 인간인지, 어느 쪽이 돼지인지. 어느 쪽이 착한 편이고 어느 쪽이 나쁜 편인지. 이놈이나 저놈이나 도긴개긴.



통치자가 바뀌어도, 체제가 바뀌어도 삶의 양상은 그대로라는 것은 얼마나 절망적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삶이 더 나아졌다고 세뇌하고 자위하며 살아가는 삶은 더욱 비참하고 안타깝다.


지금 나의 삶은 이 책의 그것만큼 고달프고 절망적이진 않은데, 그럼 이것은 과연 어떻게 얻어진 것일까. 체제의 차이 때문인 것 같지는 않다. 지금의 내가 누리고 있는 자유는 흘러온 역사 속에서의 많은 사람들의 투쟁과 저항의 결실일테다. 한국의 근현대사에도 암흑의 시기가 존재했고 아마 1984나 동물농장에 묘사된 세계와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어떤 것을 빼앗기기 전까진 그것을 누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실감하지 못한다. 두 책 속의 디스토피아, 그러나 한 때는 현실이었고 지금도 세계 어느 곳에서는 진행형일지 모를 세상을 보며 지금의 내 삶에 감사한다. 또한 늘 경각심을 갖고 깨어있어야겠다고도 다짐한다. 지금의 나는 우매한 하층 동물들보다 나을 게 없다. 이래서 아는 것이 힘인가봐. 그래서 그렇게들 계몽 운동을 펼쳤나보다.



얼른 역사 공부해야지.



1984년

1984년

조지 오웰


# 열린책들 세계문학전집 모두 읽기 프로젝트 (11/190)



 안 읽었으면서 읽었다고 거짓말 하는 책 순위에서 항상 상위권을 차지한다는 그 책. 정확히는 모르지만 대충 ‘빅브라더’ 라고 몇 번 언급해주면 간지 나는 그 책. 너~~무 유명해서 나조차도 이미 이 책을 읽은 줄로 착각하게 만들었던 책.


 첫 시작부터 무언가 훅 몰입하게 만들었다. 처음 읽기 시작해서 흐름 타고 쭉쭉 읽어내려가게 되기까지 예열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책들이 있는 반면 시작부터 끌어당기는 책이 있는데 이 책은 후자인 것 같다. 워낙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내용이 많다 보니 정치적, 비판적인 내용에 지루할 거라 예상했는데 완전히 빗나갔다. 시작부터 재미있음.


 빅브라더는 어디에나 있다. 창밖으로 보이는 건물에도, 회사에도, 길거리에도, 아파트 벽에도. 그는 모든 것을 감시하고 통제한다. 사람들은 어제의 동지였던 오늘의 적에게 마치 처음부터 적이었던 것처럼 아무런 의심 없이 증오를 발산한다. 의심하는 것은 죄이다. 증오는 증오 그 자체가 목적이다.



상층 계급의 목표는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다(? 번역이 제대로 된 건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가 더 적절할 것 같은데). 중간 계급의 목표는 상층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하층 계급의 목표는, 그들에게 목표가 있다면 ㅡ 일상적인 단조로운 일에 너무 시달려 일상적 삶 이외의 진지한 것을 거의 의식할 수 없는 것이 하층 계급의 지속적인 특징이기 때문에 ㅡ 그것은 모든 차별을 폐지하고 인간이 동등해지는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다. 그래서 역사적◦외형적으로는 똑같은 투쟁이 계속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상층 계급은 오랫동안 안전하게 권력을 쥐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조만간 스스로에 대한 신념이나 효율적으로 통치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든지, 아니면 이 둘이 동시에 상실되는 순간이 온다. 이때가 되면 자유와 정의를 위해 투쟁하는 척하면서 하층 계급으로부터 지지를 얻는 중간 꼐급에 의해 전복당하게 된다. 중간 계급은 목표를 달성하게 되면 하층 계급을 예전의 예속 상태로 다시 몰아넣고 자신들은 상층 계급에 올라선다. 곧 새로운 중간 계급이 다른 두 계급 중 하나에서, 혹은 양쪽 모두에서 떨어져 나와 투쟁은 반복된다. 이들 세 계급 중에서 단지 하층 계급만이 결코 단 일순간이라도 그들의 목표를 성취하지 못한다. 전 역사를 통해 물질적 진보가 없었다고 말하는 것은 과장이다. 심지어 퇴보의 시기인 오늘날에도 일반 시민들은 수세기 전의 시민들보다 물질적으로 더 잘살고 있다. 그러나 부의 증가, 예절의 순화, 개혁, 혁명 등은 인간의 평등에 어떤 이바지도 하지 못했다. 하층 계급의 관점에서 보면 그들 지배자가 바뀌는 것이 가장 의미 있는 역사적 변화였다.



끝없는 숙청, 체포, 고문, 투옥, 증발 등은 실제로 범한 범죄에 대한 처벌로 가해지는 것이 아니라 미래 언젠가에 죄를 범할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없애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당원들을 옳은 견해뿐만 아니라 옳은 본능을 가져야 한다.



 옳은 본능을 가져야 한다, 본능마저 옳아야 한다는 건 얼마나 폭력적인 말인가. 본능에 옳고 그름이 있는 걸까. 인간의 본능마저 평가하는 클라스.



+ 흠.. 사실 블로그에 올리는 리뷰 글들은 책을 읽으면서 중간 중간에 좋은 구절을 발견하거나 감상이 떠오르면 그때 그때 써놓았던 것들을 합치는 것이지 하나의 완성된 글이 되도록 한 번에 쭉 써내려가는 게 아니라서 글의 마무리가 항상 애매하다. 그래도 뭐 어때. 일단은 글을 써서 남기는 걸로 만족하자.


80일간의 세계 일주

80일간의 세계 일주

쥘 베른


# 열린책들 세계문학 전집 190권 읽기 프로젝트 (10/190)



 분명 학창 시절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은 나는데 내용이 정말 단 하나도 생각이 나지 않더라. 읽었다는 흔적을 남기지 않는 독서는 이렇게 증발해버리는구나 새삼 느낀다. 내가 블로그에 독후감을 쓰기 시작한 이유이기도 하고.


※ 이 글은 책에 대한 내용이 거의 없는 개인적인 내용이며 완전 중구난방이니 책 내용이 궁금하시다면 도움이 안 될 수 있습니다 ^^!



 책 내용 중에 어느 나라를 벗어나면 더 이상 영국령이 아니기 때문에 주인공을 체포할 수 없어진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마침 요즘 세계사 관련 책을 읽고 있는 중이라 왠지 그 문장이 더 생생하게(?) 전해졌다. 아니 좀 더 이해의 깊이가 깊어졌다고 해야 하나? 다른 나라 사람들에 대한 묘사도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가진 사람의 눈에는 이렇게 보였겠구나 하고 생각해보게 되고. 배경 지식이 없을 때 읽는 건 선크림이나 파운데이션을 바르듯 피부 겉만 코팅하는 느낌이라면 배경 지식을 갖고 읽는 건 수분 크림이나 에센스를 발라 피부 깊숙이 영양분을 스며들게 하는 느낌? 소설이라는 허구 세계 속 이야기로만 받아들이고 말았을 내용이 그 시대 상황에 대한 이해와 어우러지며 비로소 생명력을 띠는 느낌?


 너무 거창한가? 하지만 정말 그랬다. 역사 지식이 거의 전무했던 (지금도 별반 다를 바 없으나) 내가 고작 역사 책 잠깐 읽은 걸로도 이렇게 느끼는데, 다방면의 배경 지식을 갖고 책을 읽는 사람은 얼마나 더 큰 즐거움을 누릴까. 어쩌면 난 그동안 읽어온 책들을 온전히 다 누리지 못한 것 아닌가 싶어 괜히 아쉬웠다. 그렇다면 거장과 마르가리따도 러시아 역사를 알고 나면 재밌게 읽을 수 있을까…? ^^ 그건 아닐 거야. 역사를 몰라서 힘들었던 게 아니었으니까 ^^!



마지막 문장이 예술.


이 괴짜 신사는 여행을 하는 동안 놀랄 정도로 침착하고 정확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그다음은? 이번 여행에서 그가 번 것은 무엇일까? 이 여행에서 얻어 온 것은 무엇일까?
아무것도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아무것도 없다고 치자. 하지만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일이 일어났다. 매력적인 여인이 그를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남자로 만들었다는 것!

 사실, 사람들은 이보다 더 하찮은 이유로도 세계 일주를 하지 않을까?



사실, 사람들은 이보다 더 하찮은 이유로도 세계 일주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작가는 주인공이 여행에서 여행의 풍경을 즐기지도 않고, 돈은 돈대로 펑펑 쓰게 만들었던 걸까? 여행을 통해 주인공이 얻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주인공인 필리어스 포그는 사실 모험이나 여행 같은 데 전혀 관심 없어 보이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세계 일주를 하는 것부터가 아이러니한 유머 포인트인 듯.


 다만, 마지막에 갑자기 포그가 아우다를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장면은 조금 뜬금포이긴 했다. 하지만 다른 소설이었다면 뭐야 결말이 왜 이래 하고 불평했을 것이 이 책에서는 허용되는 느낌. 80일간 세계 일주도 했는데 사랑이 대수랴? .....흥 아닌데? 인생에서 사랑이 가장 중요한데? (혼란)


뭐 아무튼.. 술술 잘 내려가는 재미있는 책이다.







주홍 글자

주홍 글자

나다니엘 호손 저/곽영미



# 열린책들 세계문학전집 190권 읽기 프로젝트 (9/190)



 처음에 ‘세관’ 부분을 읽을 때 서문이기도 했고 혹시라도 줄거리랑 관련된 내용이 있을까 싶어 끝까지 읽었는데 그럴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이 내용을 몰라도 주홍 글자의 실제 줄거리를 이해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으니 나처럼 이 부분 읽는데 재미 없으신 분들은 본편 들어가기도 전에 지쳐버리지 말고 스킵하셔도 될 듯. 해설을 보니 ‘세관’은 익살스럽고 풍자적인 내용이라네…? 왜 나는 그 익살을 느끼지 못했는가... 번역자분은 유쾌하고 재미있었다는데…음.



 주홍 글자를 달고 있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초반 전개는 그리 놀라울 것이 없었다. 8~90퍼센트가량을 읽어갈 때쯤에도 헤스터 프린의 딸인 펄이 좀 얄미운 것 말고는 별 감흥이 없었으나, 이 책의 클라이막스는 마지막 ‘폭로’ 챕터였던 것이다.


 딤스데일 목사가 마침내 자신의 죄를 모든 사람들 앞에서 고백함으로써 자신을 짓누르던 짐을 오직 신 앞에 내려놓고 자유를 얻는 장면(내 눈에 그것은 자유였다). 죄를 숨긴 채 사람들의 칭송을 받으면서 죄의 대가를 오롯이 자신이 책임지는 생이 아니라, 죄를 드러내고 그 처분을 신에게 맡김으로써 설령 지옥에 가게 된다 하더라도 그 사후의 삶에서 외려 평안할 듯한 장면. 자신의 죄를 고백한 후 맞게 되는 죽음이 생에 대한 아쉬움이 아닌 극적인 안식이 되는 장면. 이 책의 진 주인공은 헤스터 프린이 아니라 목사가 아닐까하고 생각하게 하는 장면.


 딤스데일 목사에게 자유는 죄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이 아니다. 분명 그는 신 앞에서 합당한 처벌을 받게 될 것이다. 다만 그것과 별개로, 어렸을 때 줄에 묶여 도망가지 못했던 경험 때문에 벗어날 충분한 힘이 생긴 후에도 여전히 같은 곳을 맴도는 코끼리처럼 자신이 지은 죄에 묶여 평생을 사는 삶으로부터 벗어나게 된 것이다. 목사의 고백 부분을 읽으며 무언가 억눌려있던 것이 터져나오는 듯한 희열을 느꼈다. 죄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건 이런 기분일까.


 

 주홍 글자(The Scarlet Letter)인 ‘A’는 간통이라는 뜻의 ‘Adultery’를 의미한다고 한다. 알파벳이라서 잘 와닿지 않았는데 한국어로 ‘ㄱ’ 또는 ‘간’을 가슴에 달고 생활해야한다고 생각하면 그 수치심이 조금은 짐작이 간다. 립스틱 사러가면 스칼렛 색은 사실 다홍색이나 붉은 색에 더 가까운데, 붉은 글자라고 했으면 그 의미가 좀 더 잘 전달됐을 것 같다. 다홍 글자는 예쁜 느낌이라 좀 아닌 것 같고.


북유럽 신화

북유럽 신화

닐 게이먼 저/박선령



  재미있다. 신화라곤 초등학생 때 원래 주인이 누구인지도 모른 채 반에서 순서대로 돌려 읽던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가 전부라 내용은 기억 하나도 안 남 북유럽 신화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상태로 읽어서 그런지 편하게 읽었다. 토르가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신인지도 몰랐음. 마블에서 만들어 낸 캐릭터인 줄 알았는데...부끄부끄.


 책을 읽은 다른 사람들의 말로는 재창조에 가깝다는 평도 있던데 난 원작(신화라는 장르에 원작이라는 말도 안 어울리지만)을 모르니 뭐. 그리고 신화라는 게 원래 구전되어 내려오면서 살이 붙고 내용이 변하고 그런 거 아닌가? 역사 연구 용으로 낸 책도 아닌데 재밌으면 됐지 뭐.


사실 예스24 이벤트 도서라서 끼워 샀다. 이벤트 도서를 사야 북 쿠션을 준다길래… 그래서 뤼팽 독서 쿠션을 받았는데 흠. 예전에는 베개 받치고 그 위에 독서대 바치고 읽었던 걸 한 큐에 해결하게 되니 편하긴 하다.


아무튼 이벤트 상품 받으려고 산 책이기도 하고 킬링타임용으로 가볍게 읽은 책이라 특별히 감상평을 쓸 건 없음. 아, 거인이 등장하는 부분에 나오는 유머에서 키득거리긴 했다. 거인이 가장 작은 골무를 찾아서 거기에 맥주를 따라 토르에게 주었다, 토르는 그 양동이(ㅋㅋㅋ) 같은 잔을 들고 벌컥벌컥 마셨다,라거나 토르가 묠니르라는 망치로 잠자는 거인의 이마를 때렸는데 거인이 잠에서 깨 하는 말이 “이마에 도토리(ㅋㅋㅋㅋㅋㅋㅋㅋ)가 떨어져서 잠에서 깼다” 라거나. 내 스타일이야. 존 스칼지의 <레드 셔츠> 이후로 오랜만에 중간 중간 웃으면서 봤음. 아 레드셔츠는 리뷰 안 썼구나. 아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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