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농장

동물 농장

조지 오웰


# 열린책들 세계문학전집 190권 읽기 프로젝트 (12/190)


1984를 읽고 연달아 동물농장을 읽으니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꽤 보인다. 여론을 조작하는 내용이라던지, 폭력으로 권력을 유지하는 모습이라던지, 우매한 대중의 모습이라던지.


그러나 뭐랄까.. 좀 다른 점이 있다면 1984는 체제 아래서 고통 받는 인간의 삶에 대한 내용에 가까웠다면 동물농장은 권력의 부패?에 대해 좀 더 집중하고 있다고 할까. 1984는 체제 아래에서 한 개인의 자유나 존엄성이 짓밟히는 모습을 그렸다면 동물농장은 체제와 권력 아래에서 말로는 모두가 평등하다 하지만 사실상 계급사회이며 소수의 권력자에 의해 다수가 지배받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 느낌.



동물농장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책에 나오는 딱 두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아마 이것일 것이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



평등이라는 개념에 비교급이 가능한가? “더” 평등한 것은 과연 무엇인가. 더 평등하다는 것은 곧 불평등하다는 것이다.


처음엔 자신들을 지배하는 인간에게서 벗어나겠다는 목표를 위해 동등한 위치에서 시작했으나 점차 지식을 가진 특정 소수에게 권력이 집중되면서 권력은 부패하고, 결국 그 권력을 지닌 동물들이 나머지 동물들을 지배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타도의 주체가 타도의 대상으로 변해버린다. 처음의 목표는 퇴색한 지 오래다.



또한 작가는 마지막을 굉장히 직접적인 문장으로 마무리하고 있다.


창밖의 동물들은 돼지를 한 번 보고 인간을 한 번 보고, 인간을 한 번 보고 돼지를 한 번 보고, 번갈아 자꾸만 쳐다보았다. 그러나 이미 어느 쪽이 인간이고 어느 쪽이 돼지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어느 쪽이 인간인지, 어느 쪽이 돼지인지. 어느 쪽이 착한 편이고 어느 쪽이 나쁜 편인지. 이놈이나 저놈이나 도긴개긴.



통치자가 바뀌어도, 체제가 바뀌어도 삶의 양상은 그대로라는 것은 얼마나 절망적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삶이 더 나아졌다고 세뇌하고 자위하며 살아가는 삶은 더욱 비참하고 안타깝다.


지금 나의 삶은 이 책의 그것만큼 고달프고 절망적이진 않은데, 그럼 이것은 과연 어떻게 얻어진 것일까. 체제의 차이 때문인 것 같지는 않다. 지금의 내가 누리고 있는 자유는 흘러온 역사 속에서의 많은 사람들의 투쟁과 저항의 결실일테다. 한국의 근현대사에도 암흑의 시기가 존재했고 아마 1984나 동물농장에 묘사된 세계와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어떤 것을 빼앗기기 전까진 그것을 누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실감하지 못한다. 두 책 속의 디스토피아, 그러나 한 때는 현실이었고 지금도 세계 어느 곳에서는 진행형일지 모를 세상을 보며 지금의 내 삶에 감사한다. 또한 늘 경각심을 갖고 깨어있어야겠다고도 다짐한다. 지금의 나는 우매한 하층 동물들보다 나을 게 없다. 이래서 아는 것이 힘인가봐. 그래서 그렇게들 계몽 운동을 펼쳤나보다.



얼른 역사 공부해야지.



1984년

1984년

조지 오웰


# 열린책들 세계문학전집 모두 읽기 프로젝트 (11/190)



 안 읽었으면서 읽었다고 거짓말 하는 책 순위에서 항상 상위권을 차지한다는 그 책. 정확히는 모르지만 대충 ‘빅브라더’ 라고 몇 번 언급해주면 간지 나는 그 책. 너~~무 유명해서 나조차도 이미 이 책을 읽은 줄로 착각하게 만들었던 책.


 첫 시작부터 무언가 훅 몰입하게 만들었다. 처음 읽기 시작해서 흐름 타고 쭉쭉 읽어내려가게 되기까지 예열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책들이 있는 반면 시작부터 끌어당기는 책이 있는데 이 책은 후자인 것 같다. 워낙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내용이 많다 보니 정치적, 비판적인 내용에 지루할 거라 예상했는데 완전히 빗나갔다. 시작부터 재미있음.


 빅브라더는 어디에나 있다. 창밖으로 보이는 건물에도, 회사에도, 길거리에도, 아파트 벽에도. 그는 모든 것을 감시하고 통제한다. 사람들은 어제의 동지였던 오늘의 적에게 마치 처음부터 적이었던 것처럼 아무런 의심 없이 증오를 발산한다. 의심하는 것은 죄이다. 증오는 증오 그 자체가 목적이다.



상층 계급의 목표는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다(? 번역이 제대로 된 건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가 더 적절할 것 같은데). 중간 계급의 목표는 상층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하층 계급의 목표는, 그들에게 목표가 있다면 ㅡ 일상적인 단조로운 일에 너무 시달려 일상적 삶 이외의 진지한 것을 거의 의식할 수 없는 것이 하층 계급의 지속적인 특징이기 때문에 ㅡ 그것은 모든 차별을 폐지하고 인간이 동등해지는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다. 그래서 역사적◦외형적으로는 똑같은 투쟁이 계속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상층 계급은 오랫동안 안전하게 권력을 쥐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조만간 스스로에 대한 신념이나 효율적으로 통치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든지, 아니면 이 둘이 동시에 상실되는 순간이 온다. 이때가 되면 자유와 정의를 위해 투쟁하는 척하면서 하층 계급으로부터 지지를 얻는 중간 꼐급에 의해 전복당하게 된다. 중간 계급은 목표를 달성하게 되면 하층 계급을 예전의 예속 상태로 다시 몰아넣고 자신들은 상층 계급에 올라선다. 곧 새로운 중간 계급이 다른 두 계급 중 하나에서, 혹은 양쪽 모두에서 떨어져 나와 투쟁은 반복된다. 이들 세 계급 중에서 단지 하층 계급만이 결코 단 일순간이라도 그들의 목표를 성취하지 못한다. 전 역사를 통해 물질적 진보가 없었다고 말하는 것은 과장이다. 심지어 퇴보의 시기인 오늘날에도 일반 시민들은 수세기 전의 시민들보다 물질적으로 더 잘살고 있다. 그러나 부의 증가, 예절의 순화, 개혁, 혁명 등은 인간의 평등에 어떤 이바지도 하지 못했다. 하층 계급의 관점에서 보면 그들 지배자가 바뀌는 것이 가장 의미 있는 역사적 변화였다.



끝없는 숙청, 체포, 고문, 투옥, 증발 등은 실제로 범한 범죄에 대한 처벌로 가해지는 것이 아니라 미래 언젠가에 죄를 범할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없애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당원들을 옳은 견해뿐만 아니라 옳은 본능을 가져야 한다.



 옳은 본능을 가져야 한다, 본능마저 옳아야 한다는 건 얼마나 폭력적인 말인가. 본능에 옳고 그름이 있는 걸까. 인간의 본능마저 평가하는 클라스.



+ 흠.. 사실 블로그에 올리는 리뷰 글들은 책을 읽으면서 중간 중간에 좋은 구절을 발견하거나 감상이 떠오르면 그때 그때 써놓았던 것들을 합치는 것이지 하나의 완성된 글이 되도록 한 번에 쭉 써내려가는 게 아니라서 글의 마무리가 항상 애매하다. 그래도 뭐 어때. 일단은 글을 써서 남기는 걸로 만족하자.


80일간의 세계 일주

80일간의 세계 일주

쥘 베른


# 열린책들 세계문학 전집 190권 읽기 프로젝트 (10/190)



 분명 학창 시절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은 나는데 내용이 정말 단 하나도 생각이 나지 않더라. 읽었다는 흔적을 남기지 않는 독서는 이렇게 증발해버리는구나 새삼 느낀다. 내가 블로그에 독후감을 쓰기 시작한 이유이기도 하고.


※ 이 글은 책에 대한 내용이 거의 없는 개인적인 내용이며 완전 중구난방이니 책 내용이 궁금하시다면 도움이 안 될 수 있습니다 ^^!



 책 내용 중에 어느 나라를 벗어나면 더 이상 영국령이 아니기 때문에 주인공을 체포할 수 없어진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마침 요즘 세계사 관련 책을 읽고 있는 중이라 왠지 그 문장이 더 생생하게(?) 전해졌다. 아니 좀 더 이해의 깊이가 깊어졌다고 해야 하나? 다른 나라 사람들에 대한 묘사도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가진 사람의 눈에는 이렇게 보였겠구나 하고 생각해보게 되고. 배경 지식이 없을 때 읽는 건 선크림이나 파운데이션을 바르듯 피부 겉만 코팅하는 느낌이라면 배경 지식을 갖고 읽는 건 수분 크림이나 에센스를 발라 피부 깊숙이 영양분을 스며들게 하는 느낌? 소설이라는 허구 세계 속 이야기로만 받아들이고 말았을 내용이 그 시대 상황에 대한 이해와 어우러지며 비로소 생명력을 띠는 느낌?


 너무 거창한가? 하지만 정말 그랬다. 역사 지식이 거의 전무했던 (지금도 별반 다를 바 없으나) 내가 고작 역사 책 잠깐 읽은 걸로도 이렇게 느끼는데, 다방면의 배경 지식을 갖고 책을 읽는 사람은 얼마나 더 큰 즐거움을 누릴까. 어쩌면 난 그동안 읽어온 책들을 온전히 다 누리지 못한 것 아닌가 싶어 괜히 아쉬웠다. 그렇다면 거장과 마르가리따도 러시아 역사를 알고 나면 재밌게 읽을 수 있을까…? ^^ 그건 아닐 거야. 역사를 몰라서 힘들었던 게 아니었으니까 ^^!



마지막 문장이 예술.


이 괴짜 신사는 여행을 하는 동안 놀랄 정도로 침착하고 정확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그다음은? 이번 여행에서 그가 번 것은 무엇일까? 이 여행에서 얻어 온 것은 무엇일까?
아무것도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아무것도 없다고 치자. 하지만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일이 일어났다. 매력적인 여인이 그를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남자로 만들었다는 것!

 사실, 사람들은 이보다 더 하찮은 이유로도 세계 일주를 하지 않을까?



사실, 사람들은 이보다 더 하찮은 이유로도 세계 일주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작가는 주인공이 여행에서 여행의 풍경을 즐기지도 않고, 돈은 돈대로 펑펑 쓰게 만들었던 걸까? 여행을 통해 주인공이 얻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주인공인 필리어스 포그는 사실 모험이나 여행 같은 데 전혀 관심 없어 보이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세계 일주를 하는 것부터가 아이러니한 유머 포인트인 듯.


 다만, 마지막에 갑자기 포그가 아우다를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장면은 조금 뜬금포이긴 했다. 하지만 다른 소설이었다면 뭐야 결말이 왜 이래 하고 불평했을 것이 이 책에서는 허용되는 느낌. 80일간 세계 일주도 했는데 사랑이 대수랴? .....흥 아닌데? 인생에서 사랑이 가장 중요한데? (혼란)


뭐 아무튼.. 술술 잘 내려가는 재미있는 책이다.







주홍 글자

주홍 글자

나다니엘 호손 저/곽영미



# 열린책들 세계문학전집 190권 읽기 프로젝트 (9/190)



 처음에 ‘세관’ 부분을 읽을 때 서문이기도 했고 혹시라도 줄거리랑 관련된 내용이 있을까 싶어 끝까지 읽었는데 그럴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이 내용을 몰라도 주홍 글자의 실제 줄거리를 이해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으니 나처럼 이 부분 읽는데 재미 없으신 분들은 본편 들어가기도 전에 지쳐버리지 말고 스킵하셔도 될 듯. 해설을 보니 ‘세관’은 익살스럽고 풍자적인 내용이라네…? 왜 나는 그 익살을 느끼지 못했는가... 번역자분은 유쾌하고 재미있었다는데…음.



 주홍 글자를 달고 있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초반 전개는 그리 놀라울 것이 없었다. 8~90퍼센트가량을 읽어갈 때쯤에도 헤스터 프린의 딸인 펄이 좀 얄미운 것 말고는 별 감흥이 없었으나, 이 책의 클라이막스는 마지막 ‘폭로’ 챕터였던 것이다.


 딤스데일 목사가 마침내 자신의 죄를 모든 사람들 앞에서 고백함으로써 자신을 짓누르던 짐을 오직 신 앞에 내려놓고 자유를 얻는 장면(내 눈에 그것은 자유였다). 죄를 숨긴 채 사람들의 칭송을 받으면서 죄의 대가를 오롯이 자신이 책임지는 생이 아니라, 죄를 드러내고 그 처분을 신에게 맡김으로써 설령 지옥에 가게 된다 하더라도 그 사후의 삶에서 외려 평안할 듯한 장면. 자신의 죄를 고백한 후 맞게 되는 죽음이 생에 대한 아쉬움이 아닌 극적인 안식이 되는 장면. 이 책의 진 주인공은 헤스터 프린이 아니라 목사가 아닐까하고 생각하게 하는 장면.


 딤스데일 목사에게 자유는 죄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이 아니다. 분명 그는 신 앞에서 합당한 처벌을 받게 될 것이다. 다만 그것과 별개로, 어렸을 때 줄에 묶여 도망가지 못했던 경험 때문에 벗어날 충분한 힘이 생긴 후에도 여전히 같은 곳을 맴도는 코끼리처럼 자신이 지은 죄에 묶여 평생을 사는 삶으로부터 벗어나게 된 것이다. 목사의 고백 부분을 읽으며 무언가 억눌려있던 것이 터져나오는 듯한 희열을 느꼈다. 죄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건 이런 기분일까.


 

 주홍 글자(The Scarlet Letter)인 ‘A’는 간통이라는 뜻의 ‘Adultery’를 의미한다고 한다. 알파벳이라서 잘 와닿지 않았는데 한국어로 ‘ㄱ’ 또는 ‘간’을 가슴에 달고 생활해야한다고 생각하면 그 수치심이 조금은 짐작이 간다. 립스틱 사러가면 스칼렛 색은 사실 다홍색이나 붉은 색에 더 가까운데, 붉은 글자라고 했으면 그 의미가 좀 더 잘 전달됐을 것 같다. 다홍 글자는 예쁜 느낌이라 좀 아닌 것 같고.


# 열린책들 세계문학전집 190권 읽기 프로젝트 (8/190)

천로역정

천로역정

존 버니언 저 / 이동일


사실 예전에 <리마커블 천로역정>을 먼저 읽었는데 그닥 내 취향이 아니었다. 하지만 천로역정의 원본(?)도 언젠가 읽어봐야겠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다.


 역시 재미는 없었다. 재미를 위해 읽은 것도 아니긴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오두막>도 내 취향이 아니었다는 게 생각났다. 적어도 기독교 서적에 관해서는 이렇게 비유적인 이야기보다 차라리 직접적으로 설명하는 책이 더 나에겐 잘 맞나보다. 하지만 재미없었다고 해서 깨달음도 없었던 건 아니다.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구절들도 있어서 전자책 기능으로 밑줄 쳐가며 읽었다. 그런데 전자책 용량 때문에 이미 읽은 책들을 삭제해버려서 감명깊은 구절에 밑줄 쳐 놓은 게 싹 다 날아갔다 하… 글 쓰고 나서 지울 걸.


 아래는 책을 읽고 기억나는 내용들.


  크리스천이 첫 번째 좁은 문을 지날 때, 친절이 문을 열어주고 크리스천을 얼른 잡아 당기면서 하는 말이, 가끔 바알세불이라는 사탄이 이 문을 향해 올라오는 사람들에게 화살을 쏘기 때문에 여기로 오는 사람 중 몇 명은 이 문을 지나기도 전에 죽는다고 말한다.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 죽는 사람들이 있다는 뜻일까?


 해설자의 집. 응접실을 청소하는 부분이 인상 깊다. 먼지가 가득한 집을 빗자루로 쓸면 먼지가 더 날릴 뿐이다. 죄로 가득한 인생이 율법을 지키며 살려고 노력해봤자 죄를 더욱 살아나게 하고 마음이 더욱 죄로 가득하게 되는 것을 비유한 것이라고 한다. 격공. 죄의식이나 죄책감, 또는 참으면 참을 수록 더 강해지는 욕망 등을 뜻하는 것이겠지. 그러나 물을 뿌리고 청소하면 잘 됨. 물은 복음.



 천로역정의 내용이 성경에 기반을 두고 있다 보니 자연스레 성경에 나오는 구절에 대한 것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사탄이  자신에게 절을 하면 세상 모든 것을 주겠다고 예수님을 시험한 것에 대해. 애초에 세상의 것들은 썩어 없어질 것들이므로 그것들을 주는 것은 멀리 보면 전혀 좋은 것이 아님. 죽고 나면 사라질 것들. 이 세상을 떠날 때 가지고 갈 수 없는 것들. 그런 것들을 다 준다고 해도 어차피 죽고 나면 끝이다. 허무한 것.


 궁금한 점.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느니라". 율법을 지키는 것만으로는 사람은 절대 온전해질 수 없다는 건 이해가 간다. 율법을 온전히 지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할 뿐더러, 설령 가능하다고 해도 그것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과연 얼마나 되는가? 양심의 만족? 주변 사람들의 존경? 아무튼 여기까지는 이해가 됨. 근데 왜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을 굳이 저주 아래에 있다고까지 말하는 걸까? 율법에 얽매여있기 때문에?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라 율법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율법으로 다른 사람들을 정죄하기 때문에? 바리새인 같은 사람들을 말하는 걸까?


음... 마무리를 어떻게 하지. 아무튼 재미는 없다.



# 열린책들 세계문학전집 190권 읽기 프로젝트 (6/190, 7/190)


제인에어 (상)

제인에어 (상)

샬럿 브론테 저 / 이미선



 성장소설인듯 신파 연애소설인듯 엄청나게 재미있지도 재미없지도 않고 그냥 쭉 읽어내려가지는 그 정도. 어렸을 때 어린이용으로 나온 책을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어서 어른용(?)으로 다시 읽어보자 싶어 골랐다. 이상하다. 어릴 땐 참 재미있게 읽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모르겠다. 재미없다고 하기엔 재미있는데 재미있다고 하기엔 재미없다.


 가장 좋아하는 인물은 헬렌 번스이다. 제인 에어가 학교에서 만난 친구인데, 삶에 대한 초연한 태도와 포용할 줄 마음이 참..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헬렌이 제인에게 해주는 말들은 마치 내게 해주는 말 같았다. 헬렌의 조곤조곤한 목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어렸을 때 읽었다고 해서 말인데, 독서나 게임이나 개인적인 취미이고 유흥이라는 것은 인정하는 바이고 나 역시 게임을 좋아하지만 적어도 유년기에는 독서가 훨씬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어휘력, 상상력, 집중력, 좀 더 보태면 학습능력까지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근거는 모름ㅋ 그냥 내 경험상 그렇다. 고등학교 시절 모의고사 언어영역은 따로 공부를 안 해도 성적이 잘 나왔는데 난 그것이 99% 어린 시절의 다독으로부터 나온 결과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시 생각하면 독서가 내 취향에 맞았기 때문에 즐겁게 할 수 있었던 것이리라. 가만히 자리에 앉아 책을 읽는 게 지루한 사람도 분명 있을 테다. 책을 읽으며 작가가 건네 준 상상 속 세계로 들어가는 것보다 놀이터에서 직접 상상력을 발휘해 뛰노는 것이 더 즐거운 아이도 있을테니까. 그런 아이에게 강제로 독서를 시켜봤자 반감만 생기고 효과는 미미할 것이다. 사람마다 취향도 적성도 능력도 다른 거니까.


 그러니 무조건 강요는 할 수 없겠지만 다만 내가 바라는 것은 내가 나중에 아이를 낳게 된다면 그 아이도 독서를 좋아하기를. 그래서 아이가 좀 더 자란다면 같은 책을 읽고 서로 추천해주며 즐겁게 살고 싶다. 아 물론 남편도 당연히 독서를 좋아해야됨.


 그래서 내 미래의 남편 어딨니~ 내 목소리 들리니~

# 열린책들 세계문학전집 190권 읽기 프로젝트 (4/190, 5/190)


거장과 마르가리따 (상)

거장과 마르가리따 (상)

미하일 불가꼬프 저 / 홍대화



 와…. 정말 읽기 힘들었다. 정말 내 취향이 아니었으나 오로지 세계 문학 전집 읽기 프로젝트를 위해 꾸역꾸역 읽음. 재미 없는 책을 왜 굳이 읽느냐며 어리석다 할 수도 있겠지만 뭐!! 내 맴이야!! 기어코 190권을 다 읽고야 말겠어……...ㅂㄷㅂㄷ


 책 제목이 왠지 읽었다고 남들에게 허세부리기 좋은 제목인 것 같아 열심히 읽어보려고 했는데 재미도 없고 혼란스럽고 장면이 머릿속으로 그려지지도 않고 읽는 내내 마음 어딘가 불편하고 고역이었다. 그나마 내가 느낀 불편함이 작가가 의도한 것이었길 바랄 뿐.


 소설 전반부에 풍자가 담긴 여러가지 이야기들까지는 그런 대로 읽을만 했으나 마르가리따가 본격적으로 나오는 부분부터는 내 정신을 놓아버렸다. 기계적으로 글자만 읽어내려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검은 것은 글씨요 흰 것은 전자책 바탕화면이라…


 이 책 재미있다고 하시는 분들 진짜 존경합니다.

# 열린책들 세계문학전집 190권 모두읽기 프로젝트 (2/190, 3/190)


드라큘라 (상)

드라큘라 (상)

브램 스토커 저 / 이세욱


 내가 처음으로 읽은 뱀파이어 소설은 엘리자베스 코스토바의 <히스토리언> 이었다. 거의 출판되자마자 읽었으니까 아마 2005년에 읽었나 보다. 아무튼, 그 때 상당히 재미있게 읽고 감명받아서 무려 <뱀파이어 걸작선>이라는 책을 샀다가 실망한 후로 뱀파이어에 대한 관심을 끊었더랬다. 그러다가 최근에 출퇴근길에 가볍게 읽을 책을 고르다가 눈에 띄길래 읽었는데 과연 명작은 명작이구만. 재미있다. 오랜 시간 사랑받는 책은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이 책은 등장인물들이 주고받는 편지와 각 인물들의 일기 형식으로만 되어있다. 이런 형식 별로 안 좋아하는데도 재미있었다. 음… 뭐 재미있었다는 거 말고는 딱히 쓸 말이 없네.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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