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루테이프의 편지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C. S. 루이스 저 / 김선형 옮김


 악마가 자신의 직장(?) 후배이자 친척인 동생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이다. 예수의 일을 어떻게 방해해야 하는지, 어떻게 효율적으로 인간들을 지옥세계로 끌어들일 수 있는지에 대해 알려주고 있다.


 옛날에 쓰여진 책이라 지금의 시대 상황과는 살짝 맞지 않는 느낌도 있긴 하지만 인간사의 근본 흐름은 다 같지 않겠는가. 공감되기도 하고 아차 하며 반성하게 되는 부분들이 있다.


 그런데 아무래도 인간을 타락시키고 더 나빠지게 하는 것을 권면하는 책을 읽어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중간중간에 정신 놓고 읽다가 "아, 그래서 이게 좋다는 거야 나쁘다는 거야?" 하며 길을 잃기도 한다. 작가가 결국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헷갈려할 때가 간혹 있었다는 얘기다. 물론 정신 차리고 집중해서 읽으면 괜찮겠지만 나는 주로 출퇴근길 만원 지하철에서 비틀거리기도 하고 졸기도 하며 읽는 편이라… 그래도 종교 서적 중에서는 신선한 발상과 형식의 책이었다. 작가도 이 책을 쓰는 동안 악마의 입장에서 생각하느라 힘들었다고 한다ㅋㅋㅋ

티타임에 나누는 기독교 변증

티타임에 나누는 기독교 변증

정성욱 저


 구글에서 20대에 읽었으면 좋았을 기독교 서적이라는 SlideShare 문서를 발견하고 거기에 있는 목록 중에 골라서 읽어 본 책이다.


 이미 신앙적 지식이 두터우신 분들은 굳이 읽을 필요가 없을 것 같고, 나처럼 오랜 시간을 믿어 왔으나 (믿어 왔다고 생각했으나) 설교 시간에 늘 집중 안 해서 여전히 기독교나 성경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고 특정 이슈들에 대해 성경의 내용이 모순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혹은 사춘기를 지나며 성경에 의구심이 드는 중고딩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얇은 책이고 쉽게 설명하려고 노력한 책이므로 엄청난 걸 바라기 보다는 아하 그렇구나, 정도로 납득하고 넘어갈 수 있는 책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더 깊은 단계로 나아가기 전에 첫 발을 떼는 정도로 좋은 책?


 책 구성이 저자가 학생들의 질문에 대답을 해주는 형식으로 되어있는데, 학생들이 너무 이해력이 좋고 한층 더 나아가서 그 생각을 발전시키기 까지 한다. 분명 소개글에 실화도 있다고 적혀 있었는데..... 다들 똑똑한 사람들 뿐인가보다 ㅇ_ㅇa

순전한 기독교

순전한 기독교

C. S. 루이스 저 / 장경철이종태 옮김


 기독교 서적 중 명작 중의 명작이라고 불리는 책이다. 대학 시절에 한 번 읽었지만 그때는 과제를 한다는 느낌으로 읽었던 터라 별로 기억에 남지 않아서 이번에 제대로 읽어보고자 샀다.  왜 명작이라고 불리는 지 알 것 같다. 특히 초신자들이 읽으면 더욱 좋을 것 같음. 혹은 막연히 믿음만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시는 분들이 기초적인 신학 개념들을 익히는 데도 괜찮은 것 같다. (예를 들면 나 같은?)


 신이라는 존재의 실존 여부에 대한 답변부터 이 책은 출발한다. 내용에 의하면, 신의 존재는 인간의 내면에 보편적인 도덕 기준이 있음을 통해 유추할 수 있다. 이렇게 종교인과 비종교인을 구별짓는 근본적인 질문에서부터 시작해서 차츰 기독교와 하나님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무교지만 기독교를 알고 싶어하는 (비난하기 위해서든 호기심이든) 사람들에게도, 기독교인들에게도 이 책은 첫 시작으로 굉장히 좋아보인다.


완독: 17.05.24

깨끗한 부자
김동호


1.  

그리스도인들이 가난하게 사는 것이 더 바람직한 삶이라면 선교 후원은 누가 할까? 세상의 부가 악인들에게 가는 것이 오히려 더 위험하지 않은가? 분명 깨끗하고 선한 부자들이 있을 것이고 자신이 가진 것을 더 나은 세상을 위해 기꺼이 내어놓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렇다고 해도 단지 많이 가졌다는 이유로 그들은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보다 못한 삶을 사는 것인가? 물려받은 가난이야 어쩔 수 없지만 충분히 적정 수준의 삶의 질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음에도 굳이 가난을 선택해서 살아가야 하나? 가난한 삶이 더 값진 것인가? 저자는 아니라고 한다.

 

 은연중에 나도 그리스도인은 부자로 살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해온 것 같다. 물론 마음으로는 정말 부자가 되고 싶지만(ㅠㅠ) 왠지 양심상 멀리하는 게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늘 은연중에 머릿속에 있었다.


 왜 이런 생각을 갖고 살고 있었을까? 고민해봤더니 대충 다음과 같다.

이게 뭐라고 상자까지 쳤나 싶겠지만 그냥 보기에 너무 지저분하길래 상자로 정리한 것 뿐이다...

 

(1단계) 하나님을 믿으면 시련과 고난은 반드시 겪게 된다.

"반드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사실인 것 같다.  때로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세상의 기준을 거부해야 하는 경우도 생기기 때문. 반드시라는 말이 좀 알쏭달쏭 하지만 여기까지는 문제 없다고 가정하고 넘어가자.

(2단계) 시련과 고난을 겪으면 가난해진다

┖ ?? 시련과 고난은 무조건 가난으로 귀결된다는 생각이 잘못됐다. 물질적인 고난만 있는 것은 아니다.

(3-1단계) 가난하지 않으면 고난을 겪은 것이 아니다.

???? 물질적 풍요로움 속에서도 다른 여러가지 고난을 겪을 수 있다는 간과한 것이 첫번째 오류이고, “가난” == “고난” 이라는 전제도 잘못됐다.

 

(3-2단계) 부자라는 것은 재산이 많다는 것인데 자신의 재산을 어려운 이웃들에게 충분히 나누어주지 않고 자신이 많이 가지고 있다는 뜻이므로 잘못되었다.

???? 많이 베풀고 나누며 살아도 여전히 부유할 수 있다. 물론 나로서는 짐작도 안 가는 부러운 인생이다....ㅠㅠ

 

(결론) 따라서 부자는 제대로된 신앙인이 아니다.

???????????



대충 나는 이런 생각의 과정을 통해 저런 결론을 얻게 된 듯 하다.

 

 

 다윗, 솔로몬 등 여러 왕들, 아브라함과 욥, 요셉도 부를 누렸다. 부귀를 누리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면 왜 부귀영화를 주셨겠는가? 사실 이렇게 조금만 생각해보면 부유한 것이 잘못된 삶이 아니라는 건 금방 알 수 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을까? 사치를 부리는 것이나 과도한 소유욕은 굳이 종교적 이유가 아니더라도 개인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자신이 가진 것으로 쾌적하고 아늑한 삶의 환경을 누리는 것도 잘못인가? 사치를 부리지 않는 것과 금욕주의를 혼동하지 말 것.

 

 

2.  

저축을 하는 것에 대한 견해도 흥미롭다. 요셉 시절 애굽의 7년 풍년과 7년 흉년을 예로 들면서, 풍년일 때 흉년을 대비해 곡식을 저장해두었다고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어느 정도의 저축을 통해 어려움을 대비하기는 해야한다는 것이다. 음.. 이건 맞는 말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모르겠다. 미래의 어려움을 대비한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께서먹이시고 입히실 것을 신뢰하지 못해서 인간의 힘으로 대비하려고 하는 건 아닐까? 반박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정말 잘 몰라서 궁금해서 물음표를 붙였다. 그렇다고 저축을 전혀 해 두지 않고서 이 팍팍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지혜로운 다섯 처녀는 등불의 기름을 아끼며 미래를 대비했는데 그것과 저축도 어쩌면 일맥상통하지 않나? 어느정도 저축을 해두는 건 역시 괜찮은 걸까?

 

 

3.

 또한 이웃을 돕는 것을 "최소"한의 기준으로만 요구하신다는 견해도 흥미롭다. 성경에서 매 3년마다 한 번 씩 한 해 수익의 1/10을 어려운 이웃들을 구제하는데 사용하라고 하셨다는 것. 즉 계산해보면 30분의 1인 셈인데, 한달 수입의 1/30 정도를 이웃을 돕는데 사용하라는 것이다. 여기서 의아했다. 정말 그렇게 조금만 해도 되나? 물론 재산이 많아지면 많아질 수록 더 높은 비율로 남을 도울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게 아닌 경우 정말 1/30만 하면 적어도 문제는 없는 걸까? 성경에 있는 여러가지 말씀들 중 책의 주제와 걸맞는 구절을 골라 서술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약간 들지만 아직 난 성경에 대한 지식이 많이 없으므로 패스ㅠㅠ

나의 아버지 손양원 목사
손동희


 내가 좀 더 어렸을 때, 좀 더 순수하고 맑았을 때 이 책을 읽었다면 손양원 목사님의 처절한 사랑의 생애에 대한 뜨거움과 감동으로 눈물을 흘렸을 지도 모르겠다. 아니, 분명 흘렸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어른도 아니고 아이도 아닌 나이에 이 책을 읽는 마음엔 불편함이 더 크다. 이렇게 후대에 길이 길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기억되려면 이렇게 갖은 고초와 수난을 겪어야만 하는 걸까? 아니면 단지 시대적 배경이 워낙 한 몫 했던 시기여서 더욱 핍박을 당하고 힘들게 (물론 목사님은 기쁨으로 사셨겠지만) 산 것 뿐인가? 만약 저렇게 아프고 힘든 생을 거쳐야만 하나님의 큰 일꾼이 될 수 있다면 나는 그냥 평범하고 작은 일꾼이고 싶다는 생각… 초라한 믿음의 크기가 드러나면서 책을 읽으면 읽을 수록 나는 작아진다.

 

 그러나 손양원 목사님에게 그리고 그 가족에게 그렇게 큰 믿음을 주신 것 역시 하나님이시다. 나라고 해서 받지 못할 것이 없으며 고난을 이겨내지 못할 것 없다. 그리고 그것을 해낼 수 있는 것은 내 힘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힘일 것이다.

 

 

 ....라고 말은 거창하게 하지만 그래도 두렵다. 내심 나는 저런 시련을 겪지 않고 순탄하고 쾌적한 삶(부유함도 옵션으로)을 살다가 천국으로 가고 싶다고 바란다. 하지만 또 한 편으로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재능,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여 세상에 하나님의 사랑을 흘려보내는 축복의 통로로 쓰임받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내가 걱정할 건 없다. 주시면 주실 것이고 가져가시면 가져가실 것이고, 나는 그냥 순종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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