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1
"집에는 자주 내려가니?"
"아뇨. 설이나 추석 때 말곤 거의 안 내려가요."
"불효녀네 불효녀야."
"그러게요. 불효의 아이콘 하면 또 저죠."
"자식도 너 하나고 혼자 외로우실 텐데 자주 좀 내려가."
"그러게요. 하하."
주말 내내 집에서 빈둥대며 놀다가 잘 시간이 되어서야 문득 지난주에 다리를 다쳐 입원하셨다던 엄마 생각이 났다. 말로는 엄마 병문안 갈까 해놓고선 막상 전화 한 통 안 했다. 입에 발린 소리만 한 딸이 서운해서라도 연락하셨을 법 한데 지난 한 주 내내 카톡 하나 없었다. 난 도대체가 어떻게 되어 먹은 딸인지. 그러다보면 갑자기 내가 이렇게 정이 없고 엄마 생각을 안 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엄마 탓인데 뭐, 하며 나쁜 마음이 불쑥 올라온다.
인격이 형성되던 시기 즈음에 늘 집에 혼자 있었다. 내가 등교한 후에 엄마는 퇴근했고, 집에 오면 엄마는 출근했거나 자고 있었다. 아니, 더 정확히는 중학교 때까진 집에 가면 아빠가 집에 계셨다. 뇌를 다쳐 말을 제대로 하지도 못하시고, 거동도 불편하시고 감정을 제대로 다스리지도 못하는 장애인 아빠가. 그러다 내가 너무 힘들어하고 스트레스 받는 걸 보고 엄마가 아빠를 병원으로 보내셨다. 학벌도 배경도 없는 몸집이 작은 엄마는 내 학원비와 아빠 병원비를 벌기 위해 목욕탕에서 야간 근무를 하며 돈을 벌어오셨다. 난 학교에서 급식비와 우유값을 지원받았고, 명절이면 복지관에 들러 햄이나 식용유 세트를 받아가곤 했다. 나라에서 지원금도 받는 기초생활수급자였다.
아픈 남편과 공부를 잘 하는 딸을 둔, 키가 150도 안 되는 그 여자는 도대체 어떻게 그 시기를 버텼을까. 다 포기하고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은 안 했을까. 고된 노동에 지쳐 집에 돌아왔는데 설거지 하나 해놓지 않은 딸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뺨을 올려붙이고 싶지는 않았을까. 자신의 몸이 그냥 바스라져 사라졌으면 하고 바라지는 않았을까.
나도 안다. 내가 만약 그 상황의 엄마였다면 나는 절대로 그렇게 살 수 없었을 거라는 걸. 아무리 곱씹어도 철이 없고 배은망덕하고 불효막심한 건 나라는 걸. 엄마는 그저 너무 힘들었고, 또 그게 최선이었고, 엄마도 그냥 약한 한 인간일 뿐이라는걸. 하지만 나는 계속 나를 변명하기에 급급하다. 내가 정이 없는 건 사춘기 시절에 내가 혼자 지냈기 때문이야, 엄마랑 함께 지낸 시간이 많이 없기 때문에 엄마와의 유대감이라던가 모녀간의 정이라던가 친밀함이라던가 하는 게 많이 떨어지는 거야, 가정환경 탓이야, 내가 이렇게 생겨먹은 게 내 잘못은 아니잖아, 엄마는 왜 그런 인간이랑 결혼해서 나를 낳은 거야, 하고.
엄마가 보고싶다는 생각을 거의 해본 적이 없다. 힘들 때도 아플 때도 딱히 엄마 생각이 나진 않는다. 하지만 엄마가 이 세상에 안 계신다면 내 세상도 무너질 거라는 건 안다. 그러면 나는 정말 혼자가 되는 거니까. 그건 너무너무 무섭다.
살아계실 때 잘하자. 네가 인간이라면 너를 지금 이렇게까지 키워주신 네 엄마한테 잘 해 제발. 어리광 그만 부리고 이제 어른이 될 때도 됐잖아. 곧 28살인데 아직도 이렇게 철이 없니.
내일은 출근 전에 꼭 엄마한테 전화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