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건
나는 뭘 좋아하고 잘 할까, 그건 항상 내 인생의 화두였다. 그러다 방금 문득 내가 좋아한다는 자각 없이 이미 하고 있었던 일을 찾아보면 그 답을 알 수 있을 것도 같다 싶었다.
어렸을 땐 책 읽기. 책 읽는 걸 좋아한다고 깨닫기 이전에 이미 나는 책을 읽고 있었다. 초등학생 때 다독상을 받았었는데 내가 왜 받은 건지 이해하지 못하고 어리둥절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책을 많이 읽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지금은 많이 읽는 편이 아니지만.. 그러고 보면 난 불호에 대한 주관은 뚜렷했으나 호의 대상은 항상 불분명했다. 이걸 좋아하는 건가? 아닌가? 하는 고민을 품고 있는 대상에 대한 대답은 항상 여지없이 아니, 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애초에 나의 "좋아한다"는 기준이 너무 높았던 듯 싶다. 남들은 그냥 가볍게 난 이것도 좋아하고 저것도 좋아해 하고 말하는데 난 왜 그리 무거웠을까. 좋아한다고 말할 땐 행위의 빈도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좋아한다는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좋아하는 일이라도 그 일을 자주 하는 것이 아니면 좋아한다고 말할 자격이 없다고 진정으로 좋아하는 게 아니라고 여겼다. 하지만 이제는 좋아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던 그 생각이 더 아니라고 생각한다. 드문 드문 하는 일이라도 좋아하는 일일 수 있다. 자주 하는 일이라도 혐오할 수 있다. 매번 할 때마다 몇 시간씩 하고서는 끄고 나서 후회하는 롤처럼. 하지만 벵더정글갓기는 영원하다.
오늘 하나 발견한 건, 내가 글쓰기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때때로 그러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어서, 그러지 않을 도리가 없어서 하고 마는 유일한 행위가 아마도 글쓰기이다. 글을 쓰는 행위 자체를 좋아하는 건지 아니면 내 속에 있는 목소리를 글이라는 수단을 통해 풀어내는 것 뿐인지는 모르겠다. 뭐, 같은 말인가. 물론 글을 자주 쓰지는 않는다. 빈도부사로 표현하자면 고등학생 때 외운 게 아직도 기억나는 hardly나 scarecely 정도일까.
생리 주기가 다가오고 있는 게 분명하다. 평소에는 잘 쓰지도 않다가 유독 오늘 퇴근 시간 동안에만 열 개 남짓의 단상들을 글로 폰에다가 쏟아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자칫 놓쳐버릴까봐 허겁지겁 자판을 두드렸다. 보통 이런 날이 있고 나면 꼭 며칠 뒤에 대자연이 찾아오더라. 아무튼 드디어 하나 더 찾았네 내가 좋아하는 일. 물론 그 첫 번째는 두 말 할 나위 없이 독서이다.
졸립다. 노트북 트랙패드 감도가 너무 좋은 건지 키보드를 칠 때마다 자꾸 커서가 움직여서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트랙볼 마우스 주문했는데 언제 오려나. 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