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저/정영목



  전 제가 이 영화를 안 본 줄 알았는데 책을 읽다보니 몇몇 장면들이 영상으로 떠오르더라구요.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미 영화 버전을 먼저 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내용도 결말도 잘 기억이 안 나고 중간 중간의 장면들만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 걸 보면 영화는 그닥 저에게 감명깊지 않았나 봅니다. 그러나 책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스포일러일 수 있습니다.


 운전 중이던 한 사람이 갑자기 눈이 멀게 되면서 소설은 시작됩니다. 정체 모를 실명에 사람들은 하나 둘 씩 전염되고 오직 한 여자만 앞을 볼 수 있습니다. 전염된 사람들은 정부에 의해 격리 조치 되지만 곧 그 한 여자를 제외한 나라의(어쩌면 세계 전체일까요) 모든 사람이 전염되면서 나라는 무질서와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성만은 버리지 않으려 노력하 사람들도 있고 오직 생존만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도 있죠. 뭐 결국 마지막에는 사람들의 시력이 하나 둘 씩 돌아오면서 소설은 끝이 납니다.



 이 책에서는 대화를 표시할 때 나타내는 따옴표("")를 전혀 사용하지 않습니다. 물음표도 나오지 않아요. 


 경찰을 불러, 저 똥차를 여기서 치워, 그들은 소리를 질렀다. 눈이 먼 남자는 애원했다, 누가 날 좀 집으로 데려다주세요. 신경이 문제라고 말했던 여자는 구급차를 불러 그 불쌍한 남자를 병원으로 데리고 가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눈이 먼 남자는 들으려 하지 않았다. 필요 없습니다, 누가 우리 집 앞까지만 데려다주면 됩니다, 아주 가까운 곳이에요, 그렇게만 해주시면 됩니다. 그럼 차는 어떻게 하고, 어떤 사람이 물었다.


  이런 식입니다. 하지만 누가 무슨 말을 하는 지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화자가 위처럼 알려주기 때문이죠. 개인적으로는 지루하다거나 답답하지 않았고 오히려 저도 그 현장에서 같이 눈이 먼 사람이 된 것처럼 몰입이 잘 되더군요. 상대방의 표정, 제스처, 눈빛 그 어느것도 보지 못하고 오로지 서로의 목소리로만 대화해야하는 상황을 독자들도 느껴보라고 이런 방식으로 나타낸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나름대로 느끼는 바도 있었습니다. 눈 먼 자들의 도시에선 눈 뜬 자가 왕입니다. 눈 뜬 자가 이쪽이라고 하면 이쪽이고, 저쪽이라고 하면 저쪽입니다. 의구심을 가질 순 있겠으나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순 없습니다. 그저 눈 뜬 자가 정직하고 선한 사람이길 바라는 수 밖에요. 또한 눈 먼 자들 사이에서도 권력자가 생겨납니다. 그들은 무기를 갖 다른 자들을 협박하여 그들 위에 군림하려 하죠. 그러나 쉽지 않습니다. 역시 눈이 멀었기 때문에 무기가 있다 해도 제대로 사용하기는 힘들거든요. 그리고 무기는 영원하지 않죠. 언젠가는 못 쓰게 되는 순간이 올테니까요.



  왠지 제 자신을 반성하게 되는 책입니다. 저는 아마 아직까지는 눈 먼 자인 것 같습니다.ㅎㅎ

  읽다가 어쩐지 와닿아서 메모해두었던 구절을 적으며 마무리합니다. (편의상 ""를 사용했습니다)


"이거 원, 실명은 원래 옮는 것이 아닌데. "

"죽음도 옮지 않죠, 하지만 우리 모두 죽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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